영혼을 울리는 서정시의 금자탑 /이경자
이경자 서평
영혼을 울리는 서정시의 금자탑
김전(시인,문학평론가)
Ⅰ. 프롤로그-들어가기
좋은 시가 되기 위해서는 독자와의 소통이 되는 시이어야 한다. 오늘날 시인과 독자 사이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미래파를 들고 있다. 미래파 시인들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는 난해한 시를 발표함으로서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여기에 대립하는 극서정시는 쉽고 짧은 시로 독자들에게 가깝게 나아가고자 한다.
시대 환경에 따라 <미래파>와 <극서정시>논쟁은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있다. 문학사 측면에서 평가는 후일 어떻게 평가 될지 모플 일이다.
디지털 시대에 쉽게 이해되고 감동을 주는 서정시는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시집들 중에는 독자들에게 외면 받고 있는 시집들이 많다. 그 이유로는 독자들에게 공감을 이루지 못한 데 있다고 본다. 최소한의 은유, 최소한의 상징, 최소한의 묘사, 최소한의 울림과 떨림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경자 시인의 서정시집은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제1부 별의 무덤, 제2부 봄의 눈동자, 제3부 노천 예배당, 제4부 새벽 종소리, 제5부 조약돌로 되어 있다.
작품 전반에서 생동감이 넘치고 있다. 이는 체험을 소재로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또 시적 미감을 살리고 있어 감동적이다.
추억의 언저리에서
늙으면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과거를 돌아보고 생각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어려웠던 시절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된다. 추억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 작품들을 살펴보자
태평양을 건너온
어머니가 쓰시던 벼루
책상 서랍 속에서 깊은 잠을 잤다
동양화 습작하려고 꺼내니
그 안에서
오래 묵은 편지들이 걸어 나온다
동네 처녀들이
시집가며 가마 안에서
울며 함께 떠난 사돈지
세 딸을 시집보낼 때
바다 건너 멀리 있는
남편과 아들에게,
그 편지들은
낙루로 그려진 문신 속에
한숨이 새어 나온다
어머니의 주름진 손자국이
벼루에 더덕더덕 앉아서
나를 바라보며
얘야, 먹 갈아라
<벼루 속의 사모곡> 전문
‘시는 이미지다.’란 말이 있다. 벼루를 통하여 어머니의 사랑을 그린 그림이다.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선명한 영상으로 다가온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작품이다. 낯설기 기법으로 나타낸 부분은 가작(佳作)이다. ‘오래 묵은 편지들이 걸어 나온다.’ ‘낙루로 그려진 문신 속에/
한숨이 새어 나온다.‘ ’주름진 손자국이. 벼루에 더덕더덕 앉아서‘ 등은 의인법으로 나타내어 시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마지막 행 ’얘야, 먹 갈아라.‘ 현재법으로 나타내어 여운을 주고 있다.
가슴에 짠한 감동이 물결처럼 일어난다.
성냥이 귀한 시절 부싯돌로 불을 켤 때
부엌 아궁이와 화로에는 무덤이 있었다
무덤 속에는 조각난 별이 잠자고
어머니는 그 작은 조각을 소중히 간직했다
마른 솔잎에 별이 불꽃을 일으키면
온 집안은 태양이 떠오른다
이젠 아궁이도 화로도 사라졌으나
내 마음에 꺼지지 않는 무덤
그 속에는 군밤이 익고 감자가 익는다
따뜻한 온돌방 선반에
주룽주룽 매달린 메주가 익는다
엄마의 고전이 화로에서 탄다
호롱불 연기에 콧구멍이 까매진 아침
아궁이에 별이 탈 때
가마솥 옆에 밥그릇이 줄을 선다.
<별의 무덤> 전문
3연으로 된 작품이다. 1연에서 (과거회상)화로와 아궁이, 2연 (현재 내 마음 속의 생각) 3연 과거회상 (메주, 밥그릇) 으로 구조화 되어 있다.
아궁이와 화로를 떠올리면서 별의 무덤으로 환치시킨 점은 시의 경륜을 짐작하게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가슴에 와 닿는 추억이다. 당시에는 살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낭만과 사랑이 있었다. 시골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으로 공감각적 이미지로 시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엄마의 고전이 화로에서 탄다.’ ‘가마솥 옆에 밥그릇이 줄을 선다.’는 시적 미감을 극대화 시켜주고 있다. 이경자 시인은 시어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연금술사로 보인다.
배추 한 포기
사 등분 해서 소금에 절여
물을 붓고 며칠간 숙성시켰다
고개 숙일 줄 모르던 그녀
다소곳하고 상냥해졌다
밑 화장도 겉 화장도 않은 배추
목욕탕에서 금방 나온
여인의 모습인 듯
담백하고 깨끗한 그 맛
투명한 유리그릇에 담아
단아하게 상위에 올려진 그릇에
생배추 같은 내 고집이 어른거린다
나의 몸을 소금물에 절이고
마음속에 믿음 소망 사랑의 양념을 듬뿍 넣으니
순백한 영혼의 백김치가 되었네.
<백김치, 내 영혼의 거울>
] 백김치를 보고 쓴 작품이다. 1연과 2연은 묘사에 해당되고, 3연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으로 시를 구성하였다.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는 능력이 탁월하다. 배추를 의인화 시킨 점도 돋보인다.
누구에게나 공감이 가는 글이다. 여기에서도 비유적 이미지가 잘 묘사되었다
배추를 보고 ‘목욕탕에서 금방 나온/여인의 모습’ 마지막 연에서 배추를 자신과 동일시하여 자신을 반추하고 있다. 자신도 소금물에 절이고 믿음 소망 사랑을 넣어서 순백의 영혼으로 승화 시킨 점으로 볼 때 시적능력이 예사롭지 않다.
배추를 통하여 백김치가 태어나듯, 자신도 백김치처럼 새로운 영혼의 김치로 태어난다.는 부분에서 깨달음을 주는 시라고 말할 수 있다.
2. 적멸의 강을 건너서
자연은 윤회를 한다. 죽어야 새로 태어나는 자연의 이치, 어쩌면 무상하다. 허무의 연속이다. 그러나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불교에서도 일체유심조라고 하지 않았던가?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하다. 천주교에 귀의하여 감사와 찬송으로 살아가는 작가의 모습이 선하게 나타난다.
여러 작품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시인의 능력도 엿볼 수 있다.
공원에는
짙은 초록 붓도 없이 채색했다
떰북떰북 발자국을 찍으며
부리로 흙에 콕콕 시를 쓰는
한 쌍의 거위
시멘트 바닥 금 간 사이를 비집고 나온
하얀 민들레꽃
짓밟혀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파란 눈동자 별처럼 반짝인다
버드나무 겨울 동안 강아지 잉태하여
털이 보송보송한 꼬리 가지에 매달려
줄타기하는 곡마단
삼월은
고난의 계절을 견디며
얼었던 강은 몸을 풀어 찬송 부르고
나무는 두꺼운 살갗 찢어 파란 등 켰다
무거운 빗장 채웠던 땅
문을 열어 애벌레 부화하여 걸어 나온다
바람에 업혀 다가오는 부활의 찬양!
한 소녀가 포도주로 손을 씻는다.
< 시애틀의 삼월> 전문
작가는 미국 시애틀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향수에 젖는 것은 당연한 이치리라.
작품 곳곳에 작가의 긍정적인 삶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작품은 4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1연 2연 3연은 자연의 모습을 제시하였고, 4연에서는 작가의 생각과 느낌을 표출하였다. 선경후정(先景後精)의 구조이다.
3월은 생명을 잉태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삼라만상이 고개를 내미는 시기이기도 하다. 자연이 부활하는 계절이 바로 이때이다.
삶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묘사한 구절은 독특하다. 새로운 의미로 전환시킨 점이 돋보인다.
1연에서 ‘부리로 흙에 콕콕 시를 쓰는/한 쌍의 거위’ 2연에서 민들레꽃이 ’파란 눈동자 별처럼 반짝인다‘ 3연에서 ’줄타기하는 곡마단‘ 새싹이 돋는 모습을 ’바람에 업혀 다가오는 부활의 찬양!‘이라고 재미있게 표현했다.
이 작품 속에는 종교적 사유가 다분히 녹아 있다. 자연을 종교와 비유하여 나타낸 점도 독특하다
발자국을 그리며
빗님이 다가와 팔짱을 끼라네
슬그머니 손을 잡는 우산과
손 흔들며 반갑게 맞이하는
밤이 새도록 뜬 눈으로
동네를 지키는 가로등과
우산을 치켜들고
동구 밖 저수지를 한 바퀴 도는 중
따라오는 벌거벗은 자작나무와
빗방울이 우산을 두드리며
악보를 그려 작곡한
빗방울 행진곡에
가벼워진 발걸음
아직 떠나지 못한 노란 단풍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움직여야 해
게으름 피우려던 나를 격려하네
움푹 파인 땅 고인 물에
동그란 미소 눈웃음 지우며
바라보는 당신
<빗방울 메시지> 전문
빗방울 메시지도 동적이다. 비가 오는 모습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의인법으로 나타내어 사물과 화자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우산을 쓰고 비오는 거리를 한 바퀴 돌면서 자신에게 격려하는 자연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낯설기 기법으로 시의 멋을 더해 주고 있을 뿐 아니라 감각적 이미지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빗님이 팔짱을 끼라든지, 빗방울 행진곡, 눈웃음 지우며 바라보는 당신 등은 상상력과 함께 산뜻한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다. 한마디로 깔끔한 작품이다.
누구나 겪는 비오는 모습을 자신을 반추하는 작품이다. 정감이 넘치는 작품이다.
오래전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첫 번째 분신이 먼 길을 떠났다
겨울바람이 허리를 감싸고
하느님은 나를 외면하셔서
성전을 돌아섰다
산과 들을 다니며
마음이 입고 있는 남루한 옷을
산속 깊숙한 곳에 벗어던지고
푸른 잎으로 마음 벽을 도배했으나
금방 갈색으로 시들어버리고
내 안에 흐르는 강바닥에 금이 갔다
오랫동안 경직된 다리를
채찍으로 무릎을 꿇어 고해했다
신부님께서 보속으로
감사의 옷을 입으라 하신다
햇살이 나비처럼 날아와서
뒤란 자작나무에
빛으로 짠 감사의 옷이 반짝였다.
<보속으로 받은 감사>
슬 픔을 감사로 승화시켜 놓은 작품이다. 이경자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시의 매듭을 잘 짓는 시인이다. 시의 중심은 마지막 연이다. 작가의 생각이나 느낌을 한 덩어리로 묶어내야 한다.
보속의 뜻은 천주교에서 지은 죄를 적절한 방법으로 보상하거나 대가를 치르는 것을 말한다.
남편을 사별하였는 데 종교적 힘으로 승화 시켰다.
‘내 안에 흐르는 강바닥에 금이 갔다.’ 이런 표현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구절이다.
화자의 성숙한 삶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감사할 줄 모르고 산다.
이 작품은 작가의 성정을 잘 나타낸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3. 회상의 거울 앞에서
지나가버린 과거는 아름답다. 누구나 가슴 속에 꼬깃꼬깃 간직한 비밀 하나 쯤은
남겨두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꺼내보면서 지난날을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체험과 상상이 버무려져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한다. 이런 작품이야말로 독자에게 떨림을 주고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다.
독창적인 묘사로 형상화 시켜 놓은 작품들을 살펴보자.
흙과 어울려 놀던
열무 두 단 우리 집에 팔려왔네
떠나보내기 못내 아쉬웠던 흙
뿌리와 잎 사이 숨어서 따라오고
오래전 하늘나라 여행 떠나신
숙모님 오셨네
여름 방학 때 삼촌 집 가면
고추밭 고랑 열무는 가냘프게 자라서
숙모님 요리한 겉절이와 된장찌개
아삭하고 매큼한 맛깔스런 열무 무침
삼촌은 육이오 전 빨갱이에게
쌀 한 대박 준 죄로 끌려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아서
숙모님 눈물로 자란 열무 소금에 절였네
대동아전쟁, 6·25동란
한숨에 절여진 세월
열무 한 줄기 아작아작 씹었네
가슴 아리는 매콤한 맛.
< 열무겉절이> 전문
1연에서 열무를 통한 숙모의 생각, 2연에서 숙모님의 열무무침, 3연에서 삼촌의 죽음과 숙모님의 눈물, 4연에서 시련 속에 견뎌낸 열무 겉절이 맛으로 연결되었다.
회상의 나래를 펴가면서 지난날 아린 세월을 열무로 환치 시켜놓았다. 시는 체험과 상상으로 이루어진다. 비유를 통한 시적 능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열무를 보고 ‘오래전 하늘나라 여행 떠나신/숙모님 오셨네.‘ 하는 묘사는 독특한 발상이다.
마지막 연에서도 여러 가지 사건을 열무 맛으로 나타낸 공감각은 시적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감각적 이미지를 통하여 성공을 이룬 작품이다.
바다는
침묵으로 사나운 운명을 품어 준다.
불평하지 않고
침묵으로 운다.
세상에서 잃은 사랑
들판에서 잃은 사랑
그 뼈아픈 상처
몸속 깊숙이 숨겨 두었다.
참다못해 성화가 불길이 되면
시퍼런 파도 칼을 만들어
바람의 목을 친다.
철썩!
돌풍의 목을 벤다.
바다도 인내의 끝이 있어
운명의 원수를
칼로 사랑한다.
칼로 사랑한다.
<침묵의 칼>
이 작품을 읽으면 질풍노도 (疾風怒濤)같은 감정이 감동으로 달려 왔다가
잔잔한 파도로 가라앉는다.
감동과 공감을 주는 작품이야말로 훌륭한 작품이다. 자신의 삶을 바다에 비유하여 표출한 글이다.
바다는 모든 것을 받아준다고 바다라고 한다. 사랑도 상처도 불평도 받아주는 곳이 바다다.
이 작품에서는 역설법을 통하여 강조하고 있다. ‘침묵으로 운다.’ ‘칼로 사랑한다.’로 나타내어 시적 미감을 더해주고 있다.
‘바람의 목을 친다’ ‘돌풍의 목을 벤다’에서 감각적 이미지를 통하여 시의 효능을 높이고 있다 .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서의 말씀이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다. 화자의 끝없는 사랑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가녀린 풀잎에
곡예사처럼 매달린
동그란 눈동자
햇빛도 쉬어 가고
글썽글썽
슬픔도 다녀간 듯
투명한 동공에
넓은 바다가 있네
<풀잎에 매달린 바다> 전문
시에서 제목은 중요하다. ‘풀잎에 매달린 바다’ 는 시의 표제이다.
제목이 참신하고 시적인 표현이 매력적이다.
개성적인 발상이다. 시는 새로운 이름 짓기라는 말이 실감난다.
풀잎의 이슬을 보고 바다까지 상상해내는 상상력은 대단하다.
짧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시는 독자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주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
이슬을 눈동자로 나타내어 생동감을 부여하였고, 모두가 다녀간 우주의 한 공간으로 생각한 점은 누구나 나타낼 수 없는 표현이다.
검은 연기 허공에 뿜으며
흰 눈 위를 달리는 기차를 도화지에 옮기며
마음 깊숙한 곳 낡은 필름 한 장 펼쳐진다
6·25동란 후
콩나물시루 완행열차 삼등실
상이군인 아저씨 쇠고랑 손으로 껌 내밀어
거절하면 눈을 할퀴려 노려본다
천안 호두과자 대전 가락국수 경산 사과
정차하는 곳마다 지방특산물 차에 오르고
'사과 사이소' 아지매들 땀 냄새 묻어나는
지방 사투리 차 안은 비좁고 따뜻하다
경부선 밤차 안은 소주잔 주거니 받거니
금순아 굳세어라
목으로 넘어간 소주 한에 엉킨 노래 되고
드렁드렁 코에서 힘겨운 삶이 고함지르는
사람 냄새 정겨운 삼등 열차
얼룩덜룩 기억의 색깔을 듬뿍 칠한다
<수채화를 그리며> 전문
동족상잔의 6.25를 겪은 후 당시의 환경을 묘사한 작품이다.
역사적 아픔 속에서 우리 민족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이제는 경제대국이 되었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로 발전하였다.
피폐한 당시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그려놓았다. 3등 열차는 서민들이 이용하는
열차이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수채화를 그리듯 그려놓았다.
동시대의 사람들은 경험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다.
어려웠던 지난날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
회상의 나래를 펴보는 것도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런 작품이 우리들에게 교훈이 된다.
4. 황혼의 건널목에서
숨 가쁘게 달려왔던 길을 되돌아보고 자신을 반추하는 것은 깨달음의 시가 된다.
영혼의 숨결 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남은 노을이 빛을 발하듯이 활활 불타오르는 내면의 세계를 훑어내어 아름다운 한 줄의 시가 되었다.
영롱한 시를 읽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수묵화 같은 작품들을 음미해 보자.
가을에는
꽃잎 진 자리에
묵상하며 여물은 까만 씨처럼
나의 영혼을 성숙하게 하소서
만상이 노을빛으로 황홀하게 물든
계절의 황혼
내 인생의 황혼을 저와 같이
아름답게 하소서
깃털처럼 가벼운 몸으로
떠나야 할 때 말없이 떠나는 법을
수행하는 저 붉은 잎
훨훨 벗어버리고
저 하늘에 길을 내어서
구름과 교통하며 겨울을 맞을
과묵한 나무와 같이
스스로 침묵을 다스려
지혜의 열매 맺게 하소서
< 가을의 기도> 전문
죽고 사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며 섭리다.
1연에서 까만 씨앗 같은 영혼의 성숙, 2연은 노을 빛 같은 황혼의 아름다움, 3연은 가볍게 떠나게 하소서 4연은 겨울의 나무처럼 지혜를 구함이다.
이 작품에는 삶의 철학이 들어 있다. 세상에 와서 아름답게 살다가 가볍게 가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다. 모든 욕망을 털어내고 겨울나무처럼 침묵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시적 화자의
간절한 소망이 보이며 ‘하소서’의 반복으로 율격이 또한 살아나고 있다. 기도의 울림이 크다.
매일 아침
아버지의 정원을 간다.
깊은 숲 오솔길
초여름 보리밭과 같이
이름 모를 푸른 잎사귀들,
새들은 짹짹 아침 인사를 한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졸 졸
아버지의 품 안에 안기면
거위 털 이불같이
따뜻하고 행복하다.
매일 아침
아버지의 편지를 받는다.
미운 것도 고운 것도
사랑하라 하신다.
물같이 맑게
나무같이 곧게
잡초같이 강하게
살라 하신다.
<아버지의 정원> 전문
아버지의 정원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다. 하느님이 만들어 놓은 터전이다.
긍정적인 눈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한편의 영상을 보는 것 같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각적 이미지화 하였다
자연의 아름다운 동산 속에서 마음도 아름답게 가꾸라는 조물주의 음성을 듣는다
이 작품은 깨달음을 주는 작품이다. 다분히 교훈적이다.
작품은 작가의 아름다운 심성에서 나온다. 여기에서 작가의 아름다움 성품을 엿볼 수 있다.
무지개 피어나는 봄과
열광하는 소음들
선혈로 태우고
혼신의 땀방울로
얼룩진 여정
서산을 넘어간다
넉넉하고 질펀한
붉게 타오르는 노을처럼
아름답게 살다가
님께서 부르시면
나 환희로
손들고 나아가리라
<석양> 전문
아름다운 작품이다. 지난 날 열정적인 삶들도 세월이 가면 노을처럼 사라진다.
이 세상에서 큰 족적을 남겼지만 누구나 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
아름답게 사라지는 노을이 되고 싶다고 하였다. 노을은 아름답다. 마지막까지 불태우는
정열적인 모습 때문이다
하느님이 부르시면 즐거움으로 손들고 나아가겠다고 하였다.
]아름다운 이별이리라. 하느님이 부르면 당당히 나아가겠다는 시적 화자의 당당한 모습과
아름다운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5. 사랑의 길목에서
헌신과 봉사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든다. 세상의 빛이다. 아직도 세상에는 천사같이 아름다운 사람이 많기 때문에 살만하다.
작품은 작가의 가슴 속에 들어있는 체험과 상상력에서 나온다. 작가의 아름다움이 작품으로 표출되기 때문에 작품을 보면 작가의 성품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사물을 통하여 사랑을 심어 아름답게 꽃이 피는 작품을 볼 수 있다.
이슬보다 더 영롱한 아름다운 작품들이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잘려진 나무와 고목들이 누웠다
잎이 무성할 때는
팔랑팔랑 왁자지껄 부채질하며
이마에 땀방울 씻어주었다
늙은 전나무 당뇨병에 발이 문드러져
강풍에 쓰러지고
머리카락 엉성한 대머리 활엽수가
내어준 어깨에 비스듬히 누운 고목에
묵은 낙엽은 발을 덮어주고
이끼는 파란 스웨터 짜서 입혔다
활엽수는 오랜 세월
무거운 무게 불평 없이 버틴다
할아버지 같은 나무 옆에
별꽃들 재롱부리며
가장 낮은 곳에서 노약자를 지켜주는
사랑이 충만한 숲속 양로원
<숲속 양로원> 전문
숲 속들 보고 양로원을 묘사하고 있다. 자연도 사랑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무들을 의인화 시켜 생동감을 부여하였고, 감각적 묘사를 통하여 구체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 작품을 읽어 보면 사랑이 넘치는 양로원이 눈에 선하게 나타난다.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인간도 숲속 식물처럼 불평하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며 서로 도와 가면서 살아간다면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말썽 많은 한국의 요양원과 겹쳐져서 떠오르고 있다.
사랑이 넘치는 요양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무더운 여름
모리는 하루에 여섯 집을 방문하며
환자를 목욕시킨다
듬직한 체구에 달덩이 같은 환한 미소를 잃지 않고
지체 불구 장애인을 목욕시키는 일을 한다
모리가 오는 날은 마음이 놓인다
힘이 좋아서 할아버지를 휠체어에
안아서 앉히고 샤워를 시킨다
금방 기저귀를 채웠어도 배설을 할 때가 있다
남에게 험한 일을 되도록 시키지 않으려 해도
종종 용변을 기저귀에 하게 되어도
그녀는 깨끗이 씻어 로션을 온몸에 바르고
시트도 갈고 정갈하게 마무리 지운다
바쁘게 살면서 그녀는 넓은 야드에
딸기와 야채를 농사지어
딸기를 바구니에 담아 와서
나누어 주어 한입 베어 물었다
달콤한 붉은 피가 몸 안에 스며들다
25년 동안 가시밭길에 꽃을 뿌리며 걸어온
그녀의 땀방울은 눈부신 성화(聖花)로 피어나다
<성녀(聖女)> 전문
사실적인 작품이다. 모리의 봉사활동을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다.
모리는 성녀다. 자기 부모도 모시지 않고 요양원에 보내는 현실을 생각해 본다.
노약자를 위하여 배변까지 책임지고 사랑을 나누는 모리는 천사와 다름없다. 세상은 이렇기 때문에 아름답다. 모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시적화자는 사랑을 가감 없이 잘 나타내고 있다.
호랑이 산 입구
이정표에 기대선 키다리 아저씨
누군가를 산꼭대기까지
손을 잡고 안내해주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기다리네
삶이 버거울 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절실하지
앞을 못 보는 장님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
그는 강풍에 잘린
나뭇가지의 분신이지만
굽은 등 일으켜 세우고
필요한 이에게 어깨를 내어주는
무뚝뚝하고 수더분한 모습이 정겹네
누구의 지팡이가 되어 주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팡이> 전문
이 작품에서도 사랑이 출출 넘친다. 강풍에 잘린 나무의 분신이지만 남을 위하여 헌신하는 지팡이는 안내자가 되고, 노약자의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지팡이는 사랑의 증표이다.
굽은 등 일으켜 세우고/필요한 이에게 어깨를 내어주는/무뚝뚝하고 수더분한 모습이 정겹네
이 부분에서 구체성을 나타내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지팡이가 되어주는 사람이 많으면 사회는 맑고 밝아질 것이다.
이경자 시인의 작품은 사랑이 시의 행간마다 차곡차곡 배어 있다.
2. 에스프리
이경자의 시집 ⌜풀잎에 매달린 바다⌟에서 작품마다 맑고 밝은 영혼의 숨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가톨릭 신자인 작가의 시에서 사랑이 물씬 풍기는 시편들을 만날 수 있다. 독자들을 깊고 고요한 사유의 바다로 이끈다. 이는 시인의 품격이나 삶의 모습과 어우러져 큰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시는 시인의 거울이다. 시인의 성정이 작품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시를 만나면 시인을 보는 것과 같다.
주제 면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작품마다 사랑이 넘쳐나고 있다.
삶과 작품의 일치성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삶이 시이고 시가 곧 삶이다.
삶에서 상상력을 덧입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언어의 연금술사다
자연과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우리가 살아가는 온 우주가 정원이다.
무한한 상상력으로 펼쳐지는 그의 시적 경계는 끝이 없다.
시어를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가 만들어내는 작품은 한결같이 생동감이 넘쳐 난다.
감각적 묘사로 사물을 구체화시키는 능력, 시의 끝부분에서 전환 시키는 능력, 사물을 이미지화 시키는 능력 등이 조화롭게 이루어진 시의 교과서다.
이경자의 시집 ⌜풀잎에 매달린 바다⌟는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시집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경자 시인은 사랑의 시인이다. 더욱 매진하길 바라며 제2 시집도 기대해 본다.
<시집 뒷면에 넣을 글>
이경자 시인의 시집 ⌜풀잎에 매달린 바다⌟을 살펴보면
주제 면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작품마다 사랑이 넘쳐나고 있다.
삶과 작품의 일치성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삶이 시이고 시가 곧 삶이다.
삶에서 상상력을 덧입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언어의 연금술사다
자연과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우리가 살아가는 온 우주가 정원이다.
무한한 상상력으로 펼쳐지는 그의 시적 경계는 끝이 없다.
시어를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가 만들어내는 작품은 한결같이 생동감이 넘쳐 난다.
감각적 묘사로 사물을 구체화시키는 능력, 시의 끝부분에서 전환 시키는 능력, 사물을 이미지화 시키는 능력 등이 조화롭게 이루어진 시의 교과서다.
이경자의 시집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시집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