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 북유럽을 찾아서
김전(시인,문학평론가)
올해는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지만 미지의 나라를 찾아가는 것은 나에게 활력소가 되리라
자주 가는 여행이지만 갈 때마다 내 가슴을 떨리게 한다.
8월22일 출국하여 11박 12일 동안 러시아,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에스토니아를 돌아오는 여정이다.
여행 날을 받아 놓으면 가슴 밑바닥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기대감이 꿈과 낭만을 일으켜 세워 날개를 단다.
유럽을 향해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해 뜨는 동방의 나라에서 해지는 서쪽 나라로 가는 거다.
북쪽의 끝자락에 붙은 북유럽에는 백야와 흑야 현상이 반년을 지배한단다. 3개월은 온통 밝음이 지배하고 3개월은 어둠이 지배하는 곳. 상상의 그곳을 가려는데 어찌 설레지 않겠나? 처음 계약했을 때는 백야의 정점인 6월 중순이었는데 인원 미달로 날짜가 8월로 연기됐다. 8월 하순이니 백야가 지나고 정상적인 낮과 밤이 이어질 때라 좀 아쉬웠다.
같이 가는 동행자로 교직에서 함께했던 교장선생님 둘 부부와 우리 부부 6명이다. 이들 부부와는 호주 여행길에서 의기투합했고, 작년에 미국 갈 때도 함께했다.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끼리의 동행은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아침 일찍 대구에서 인천공항까지 가는 KTX가 있어 우리 6명은 설레는 마음으로 일찍 출발했다.
인천공항엔 여행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들도 인파 속으로 당당히 들어갔다. 마음 한구석에는 건강에 대한 불안이 있었지만 전쟁에 임하는 병사같이 여권 가방을 사수하면서 검색대를 통과했다.
매번 여행 때마다 출발점에 서면 설렘도 있지만 긴장의 끈을 바싹 조이게 된다. 또 가슴을 활짝 열어젖히고 타국의 풍경과 문화를 담아 와야 한다는 사명감도 가진다. 비행기가 이륙하면 그때부터 선전포고가 발효되는 것이다.
Ⅰ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러시아
첫 여행지인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 사뿐히 내렸다. 학창시절 배웠던 공산주의 종주국에 발을 디딘 셈이다. 내 머릿속엔 아직도 공산주의, 동토의 나라, 끝없이 펼쳐지는 시베리아 벌판, 이런 단어들이 뒤얽혀 요동치고 있다.
91년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땅이 넓고, 인구도 1억5천만이라니 위협적이다. 오늘 밤은 호텔에서 보내고 내일은 모스크바 시내를 둘러볼 예정이다.
아침 해살을 받으며 찬란한 문화를 자랑했던 러시아 왕국의 발자취와 붉은 깃발을 들었던 그 잔재를 보려 한걸음 발을 옮긴다.
말로만 들어왔던 붉은 광장이다. 이름에서 느끼는 무시무시한 선입견이 말끔히 걷혀졌다.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양파 모양의 돔을 가진 아름다운 성당 '성 바실리'가 붉은 광장을 지키고 있다. 생생한 색조, 탁월한 외관은 러시아 건축물의 정체성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됐다.
이름만 들어왔던 크레믈린 궁의 아름다움도 만만치 않다. 붉은 광장 주위로 3대 성당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고, 이반 대제의 종탑이 우뚝 서서 이 광장을 수호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푸틴 대통령의 집무실도 있다니 내가 선 이곳이 러시아 정치의 중심이다. 러시아는 러시아 정교라는 이름을 붙여 기독교를 나름 변화시켜 국교로 정했다.
다음으로 모스크바의 중심가인 아르바트 거리를 거닐었다. 이 거리에 현대식 굼 백화점이 버티고 있으니 자유 물결이 흘렀음을 알 수 있다. 이 백화점은 3층 건물로 지붕은 유리로 돼있다. 그래서 자연광선이 이 백화점을 더욱 밝게 해 주고 있다. 서울의 명동 거리와 비슷하다. 차가 다니지 않는 거리를 걸으며 이국적인 정취에 젖어본다. 푸시킨의 동상과 아내 '나탈리아 곤차로바'의 동상이 손을 잡고 서 있다. 학창시절 푸시킨의 '삶'이라는 시는 암송 순위 1위에 두었다. 그 푸시킨이 이 거리에서 신혼살림을 했다고 한다. 지금도 남아있는 푸시킨의 옛집은 그의 박물관이 됐다. 또 음유시인 '야쿠자바' 동상도 있다. 그 옆에서 포즈를 취하며 시인 흉내를 내 본다.
이 거리엔 특이하게도 지저분하게 낙서가 된 벽이 있다. 깨끗한 거리와 대조되는 이곳은 고려인 3세인 '빅토르 최'를 추모하는 공간이란다. 그는 국민 가수 겸 영화배우였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서구적인 록밴드 '키노'의 리드였다. 그는 28세에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했고, 러시아 국민들은 27년이 지난 오늘도 그를 추모하고 있다. 벽 앞에는 방금 다녀갔을 법한 꽃다발이 놓여있고 정 중앙엔 그의 사진이 걸려 있다.
북유럽 5개국을 돌아보고 마지막 날 러시아의 옛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둘러 봤다. 처음 본 모스크바는 최근의 모습과 공산 시절의 잔재가 있는 곳이고,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는 200년 전의 러시아의 수도였다. 그러니 중세의 역사가 남아있는 곳이다. 지금도 제2의 도시로 문화와 예술의 중심에 있다. 유서 깊은 도시의 거리에는 18세기 초부터 지어진 매우 다양한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과 신 고전주의양식의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다.
겨울 궁전, 여름 궁전, 성 이삭 성당, 페트로파블롭스키 요새, 미술관 등은 이 도시를 더욱 빛내 준다.
표트르 대제의 여름 궁전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페트로 드보레츠'는 표트르 대제가 1709년 스웨덴과의 '폴바타'전투에서 승리한 후 지었다. 러시아 황제나 귀족들은 여름을 지내기 위해 이곳에 별궁을 지었다. 네델란드식 바로크 양식으로 설계되었으며 위 공원과 아래 공원으로 나뉜다. 12시에는 크고 작은 144개의 분수에서 일제히 물을 뿜는데 모두들 그 장면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12시 정각에 '레닌그라드의 눈물' 이라는 음악과 함께 분수가 나오고 음악이 그치면 분수도 그친다. 이 분수는 전기로 아래서 위로 뿜어 올리지 않고 자연적인 방법으로 지대가 높은 윗동네에서 물을 내려 보낸다고 한다.
겨울 궁전은 로마노프 왕조 때 캐서린 대제가 만들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소장품은 230만 점이나 된다고 한다. 박물관은 6개 부문으로 나누어져 있고 일부만 공개되고 있다. 러시아 2월 혁명 당시는 임시 정부청사로 쓰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회화 작품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다.
넵스키 대로는 이 시의 중심이 되는 메인 대로로 궁전 광장에서 시작해 알렉산드로 넵스키 성당까지 이어지는 최대 번화가다. 이 거리에선 예술가와 화가들을 만날 수 있다. 앞에는 네바 강이 흐르고 주위는 온통 아름다운 건축물이 줄지어 서 있다. 음침하고 음산할 것이라는 생각들은 이제 내 머리 속에서 빛을 잃고 말았다. 두 도시로 러시아의 대부분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은 착각일까?
Ⅱ 예술의 도시 핀란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국경을 넘어 핀란드로 향했다. 핀란드가 바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붙어 있는 나라라니! 오늘 러시아 국경을 넘어 핀란드로 입국하면서, 작년에 미국서 캐나다 국경을 넘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순탄하게 잘 진행됐다. 그러나 여긴 좀 다르다. 호텔에서 아침 먹을 시간도 없이 5시 30분에 도시락을 들고 출발했다. 러시아 국경을 넘기가 아주 까다롭기 때문이란다. 자신의 나라에 왔던 관광객에게 까탈스럽게 구는 것은 아직도 공산주의 잔재가 남아서 그런 건가? 아님 큰 나라의 갑질인가? 첫 번째로 직원이 차에 올라 여권 검사를 하더니 다음번엔 모두 버스에서 내리란다. 차도, 짐도, 사람도 샅샅이 검사를 했다. 그리고 또 한 번 직원의 점검을 받고서야 통과했다. 그에 비해 핀란드 입국은 간단했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로 가는 길은 소나무와 자작나무들이 쭉쭉 뻗어 키 자랑을 하는 삼림지대다. 이 나라는 100년 전까지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나라다. 지금은 공화정이고 자유민주주의 나라지만 그때의 잔재가 남아있다. 시내 한복판에 원로원 광장이 있고, 알렉산드로 2세의 동상이 우뚝 서서 핀란드를 호령하는 듯하다. 원로원은 왕정시대 왕의 자문 기관이다. 그리고 알렉산드로 2세는 러시아 황제가 아닌가! 핀란드 국민들의 입장에선 굴욕의 역사다. 그리고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역사일 것이다. 여기서 이 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총독부 건물을 일제의 잔재며 부끄러운 과거라고 허물었다. 그 건물이 맥없이 무너질 때 국민들은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 국민들의 생각은 굴욕의 역사도 역사인 만큼 보존 한다는 것이다. 후세인들이 굴욕의 역사를 교훈 삼기를 바랐을 것이다. 알렉산드로 동상 아랫부분에 정의, 노동, 희망, 평화를 나타내는 조형물이 받치고 있다. 이는 무너진 핀란드 인의 자존심을 살려주고 있다.
이곳에도 훌륭한 건축물이 많다.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건물들이 러시아와 비슷하다. 헬싱키 대성당은 루터파의 개신교 교회로 흰색 바탕의 건물과 녹색 돔이 특징이며 멀리서도 돋보이는 건물이다. 이것도 러시아의 건축 양식과 많이 닮았다. 이 나라의 명물 중 하나는 암석교회다. 시내가까이에 흉물스런 바위산이 있었는데 이를 잘 활용했다. 그 바위산을 적당히 파내고, 깎고, 쌓아서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었다. 그 지혜가 놀랍다. 밖에서 보면 큰 바위 굴속에 교회가 있는 것같이 보인다. 특이한 것은 지붕과 중앙엔 구리를 이용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부로 들어가면 굴 속 같은 느낌은 전혀 없고 아주 밝다. 또 구리로 인해 음향효과까지 있으니 악기를 연주하거니 찬양할 때도 스테레오 효과를 낸다고 한다. 또 하나의 명물은 시벨리우스 공원이다. 이 공원은 핀란드가 낳은 세계적 작곡가 '잔 시벨리우스'를 기념하여 만든 공원이다. 공원 중앙에는 조각가 '에이라 힐튜넨'이 조각한 거대한 스테인리스 파이프 구조물과 시벨리우스의 얼굴을 표현한 부조가 있다.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의 애국가 '필란디아'를 작곡한 음악가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마켓광장이라는 곳으로 갔다. 이곳은 항구 도시로 올림피아 항과 카타야노카 항이 가까이 있어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또 이 시장은 이색적이다. 각종 과일과 야채, 생선, 고기 등의 식료품과 목공예 수예품까지 다양한 물품이 거래되고 있다, 생선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는데, 생선 가게에서 생선을 고르면 그걸로 즉석요리를 해 주고 있다. 우리들은 입맛에 맞을지 몰라 살구만 사먹었다.
오늘 저녁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 투르크에서 초호화유람선 '실자라인'을 타고 핀란드를 넘어 스웨덴 스톡홀름에 가야한다.
실자라인은 발틱 해에서 가장 큰 크루즈이다. 이 유람선은 길이가 212m, 폭29m로 2,8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부대시설로는 다양한 레스토랑, 다섯 개의 바, 어린이 놀이 방, 사우나, 백화점, 회의실, 산책로 등 여러 시설이 있다. 아파트 한 동을 통째로 물에 띄운 것 같다. 배정된 방이 9층의 76호이고 그 위층도 있으니 어마어마하다. 여기서 제공되는 식사는 초호화판이라 무얼 먹을지 모르겠다. 와인, 맥주 등도 무한 리필로 제공된다. 배를 타면 멀미가 날 것이라 멀미약을 준비했는데 쓸모없게 됐다. 적당히 흔들리니 오히려 요람 효과가 있어 모처럼 숙면을 취했다.
배에서 내리니 아침이고 스웨덴 스톡홀름에 닿아있었다. 스톡홀름 투어는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하기로 하고 오늘은 버스를 타고 스웨덴을 가로 질러 하루 종일 노르웨이를 향해 달렸다.
Ⅲ.피오르드의 나라노르웨이
웅장한 대자연을 품고 있는 나라. 피오르드의 나라, 나라 전체가 청정지역으로 오염되지 않은 나라. 사회 복지 제도가 잘된 나라라는 수식어가 붙은 노르웨이를 가기 위해 어제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스웨덴을 통과했다. 이 나라는 스웨덴에서 독립할 때 버려진 산악 땅만 받아 아이슬란드와 함께 살기 힘든 나라였다.
그러나 1970년 유전이 발견되고부터는 부강한나라 대열에 끼게 됐다. 제조업이 발달하지 않아 물가는 비싸나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노르웨이를 찾고 있다.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긴 자전거 도로를 갖추고 있어 대부분의 국민들이 자전거를 이용한다. 또 시티 바이크도 있어 필요할 때면 빌려서 타면 된다.
오늘은 기다리던 피오르드를 만나는 날이다. 가는 길에 노르웨이 오따에서 롬스타브 교회를 만났다. 이는 바이킹 시대 교회로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교회란다. 스타브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나무로 지은 교회다. 우리나라의 별장을 연상하듯 아담하고 예쁜 모습을 하고 있다. 교회 정원은 온통 묘지로 이용되고 있는 점이 좀 꺼림칙하다. 게이랑에르에서 헬레쉴트로 가는 길에 엄청나게 큰 페리를 탔다. 이 배는 버스, 자동차, 사람들을 실어서 해협을 건넌다. 우리들은 버스를 탄 채로 배에 오르고 배가 출발하면 버스에서 내려 배 안을 돌아다니며 풍경을 즐기다 배가 정박하면 버스를 탄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를 보러가는 도중 차 안에서 귀에 익은 음악이 들린다. 가이드가 준비한 '솔베지의 노래'다. 이는 '에두바트르 그리그'가 작곡했다. 인형의 집으로 잘 알려진 입센의 희곡 '페르권트'의 배경 음악이었다고 한다. 입센이 노르웨이 사람이고 아름답고 슬쓸한 음악 '솔베지의 노래'도 이 나라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나라는 자랑거리가 자연 외에도 많이 있어 부럽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는 2005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1500m 산들 사이에 형성된16Km 길이의 V자형 계곡으로 무수한 폭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피오르드에 떨어지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봐이야 빙하를 보면서 빙하 박물관으로 향했다. 가는 길도 송네 피오르드의 끝자락이라 아름다운 경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피얼란드 빙하 박물관에서 빙하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다. 놀랄 일은 5300년 전의 인간이 냉동된 상태로 발견됐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접경 지역에서 발견됐는데, 인간의 형체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있는 모조품으로 당시를 짐작할 수 있다. 또 실물 캐나다 북극곰이 포획 돼서 박제 상태로 전시돼 있다.
라르달에서 플롬으로 이동해서 플롬 산악열차를 탔다. 고대 노르딕어로 평평하고 탁 트인 땅이라는 뜻의 플롬은 송네피오르드에서 갈라져 나온 아를랜드 피오르드의 아름다운 계곡이다. 일찍이 1340년에 알려진 유명한 관광지다. 산악열차는 까마득한 협곡과 6Km에 이르는 계곡 길로 달린다. 주위 경관이 뛰어나 눈을 창밖으로 고정했다.
베르겐으로 이동해서 베르겐 명물인 어시장을 돌아보고 게이블카를 타고 베르겐 시내를 전망했다. 베르겐 항구에는 밝게 칠해진 목조 건물 수십 채가 바다를 향해 일렬로 늘어서 있는 모습이 볼만하다. 이렇게 항구에도 빼어난 건축물이 있다는 점은 이 도시의 자랑이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들어왔다. 수도인 대 도시인데도 숲 속에 위치해 있다. 오슬로는 유럽에서 5번째로 큰 국가인 노르웨이의 수도다. 13세기 호콘 5세에 의해 수도로 지정됐다. 이 도시의 독특한 건물 양식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오슬로 시청사에서는 노벨 평화상 수상식이 거행된다. 예술가의 그림과 조각으로 장식된 시청사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수상대가 영예롭게 놓여 있다.
이 시에서 중요한 곳인 비겔란 조각 공원으로 이동했다. 세계적인 조각가 '구스타프 비겔란'의 조각품이 있는 조각 공원은 그 규모부터가 거대하다. 여기는 작가가 후기에 만든 기념비 적인 작품들이 많다. 입구와 다리, 분수, 원형 계단, 모자이크 모양의 미궁과 숲을 이루고 있는 인물 석상들을 비롯해 200개가 넘는 모든 조각품을 설계했다. 그 가운데는 270t에 이르는 단단한 화강암 덩어리 하나로 조각해 놓은 17m높이의 모놀리스가 있다. 이는 121개의 조각상으로 이루어진 36개의 군상으로 모두 인생에서의 각 시기를 (탄생,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죽음) 다루고 있다.
다음으로 바이킹 박물관으로 갔다. 거대한 몸집과 뛰어난 항해술로 유럽의 바다를 호령하던 옛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조상이 바이킹이다. 이 박물관은 오슬로 대학교 문화역사 박물관 중 하나다.
3척의 배는 각각 오세베르그, 고크스타, 투네다. 이곳에 전시된 배들은 장례용으로 사용되었던 선박들이라 한다. 당시 고위층이나 지도자들이 장례를 치를 때 배도 함께 수장시켰다고 한다. 오세베르그는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 이는 800년대 약 50년 동안 여왕의 전용선으로 사용했다. 발견 당시 배의 상태도 좋았고 여왕의 장식품과 다양한 유품이 나왔다. 이곳에서 두 여인의 시신이 나왔는데 그들이 누군지는 모른다. 투네는 배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로 발견됐다. 발견 당시 배의 밑바닥을 제외하곤 부패됐고 남성의 시신이 나왔다. 대부분의 유물은 도둑맞고 몇 가지 유물을 통해 신분이 높았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칼요한스 거리에는 그랜드 호텔이라는 푸른 건물이 있는데 여기서 노벨 평화상 후보들이 투숙한다고 한다. 왕궁, 의사당, 박물관 등 주요 건물이 있는 거리다. 노르웨이 왕궁은 노르웨이와 스웨덴 왕을 겸하던 시절에 평소 스톡홀름에 머물던 국왕이 임시로 거주 했다.
저녁에 DFDS SEA WAYS 를 타고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간다. 이 유람선은 덴마크 국적의 배로 오슬로와 코펜하겐을 오가는 초호화판 유람선이다. 여러 시설을 갖춘 유람선으로 실자라인에 버금간다.
Ⅳ.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덴마크
덴마크는 북유럽 국가 중 우리에게 비교적 친근한 나라다. 인어공주가 살았고 안데르센이 살았던 나라라 그렇다. 그러나 막연하게 알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였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덴마크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됐다. 먼저 이 나라와는 대한제국 말기 1902년에 두 나라는 수교조약을 맺었다. 그 당시 궁중에 처음으로 전화가 개통됐는데 이도 덴마크의 도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한국전쟁 때는 '유틀란디아호'라는 병원선을 띄워 의료지원을 했다. 그로 인해 유틀란디아호에서 근무했던 250여명의 의료진들은 한국문화를 소개했다. 지금은 한국 입양아들이 이 일을 맡고 있다.
이들의 노력으로 1975년 9월 코펜하겐 대학에 한국학과를 개설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유람선 DFDS에서 내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을 한 눈으로 훑어
본다. 첫 인상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바닷가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중세 도시를 보는 듯하다. 눈 안에 들어오는 모든 건축물들이 고전적이다. 안정감을 준다. 평화롭다. 이래서 덴마크 국민들이 행복지수 1위를 마크하며 행복을 느끼고 사나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여유로워 보인다. 이는 정치 지도자들이 권위를 벗어버리고 합리성적인 사고로 나라를 다스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예로 지방법원 건물도 1700년대에 지은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이곳 판사들은 판사 복을 입지 않고 재판을 한다고 한다. 또 1843년에 개장했다는 '티볼리'테마 공원도 특이하다. 그 당시 어린이를 위한 시설을 갖춘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이런 환경이라 동화 작가 안데르센이 나오고, 노벨상 수상자가 13명이나 배출됐나 보다. 권위와 가식을 벗어버린 평화의 나라,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의 수도에서 배를 타고 운하투어를 했다. 운하 주변엔 수상 가옥들이 늘어섰는데 지금이라도 항해 할 수 있을 정도의 배들이다.
그 중에는 대학 기숙사도 있고 수상 비행장도 있다. 운하 주변에 늘어선 해운회사, 오페라 하우스, 등의 주요 건축물들이 모두 중세풍의 중후한 아름다움을 주고 있다. 배를 타고 다리 밑을 지날 때 갑자기 '수구리'라는 우리말이 들렸다. 덴마크 해설사가 이곳에서 머리를 숙이라는 뜻의 한국어를 쓰고 있다고 했다. 우리들은 신이 나서 '수구리'를 외쳤고, 같이 승선한 외국인들도 알아듣고 머리를 숙였다.
아말리엔보르 궁전은 1794년부터 지금까지 덴마크 왕실이 거주하고 있다. 로코코 양식의 건물로 중앙 광장 주위로 4개의 건물에 왕족이 거주하고 있는데 내부는 공개되지 않는다. 정오에 거행되는 왕궁의 근위병 교대식 장면을 보려고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고 있다.
나하운 항구는 니하운 운하에 위치해 있다. 새로운 항구라는 의미로 1673년에 개항했다. 유람선을 타고 남쪽에 나열돼 있는 18세기 풍의 알록달록한 건물들을 감상해 본다. 과거의 항구도시로서의 기능보다는 레스토랑과 카페, 부티크 등 상점과 관광객들로 붐비는 쇼핑과 휴식처가 됐다.
덴마크가 낳은 세계적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집이 가난해서 여러 번 이사를 했는데, 이곳 니하운 항구의 18번지와 20번지에 살면서 창작 활동을 했다고 한다. 주위 건물들이 전체적으로 파스텔 톤으로 칠해져 있다. 마치 안데르센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 아름다운 경관이다. 이곳 바닷가에 있는 인어공주 동상은 1913년 네델란드 칼스버그 맥주 회사 회장의 의뢰로 조각가 '에드바르트 에릭슨'이 제작했다. 전체 길이 80cm에 불과한 작은 동상이지만 코펜하겐의 랜드 마크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셀렌섬에는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게피온'이 황소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모습의 조각상이 있고 아래로 분수가 있다. 여신이 황소 4마리를 동원해서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뜯어내 섬을 만들었다는 그 전설의 섬이 바로 셀렌섬이다.
코펜하겐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동족 방향인 스웨덴 쪽으로 이동해 갔다. 내일은 스톡홀름에 도착할 것이다.
Ⅴ. 복지국가를 자랑하는 스웨덴
스웨덴은 세계적인 복지국가이며 입헌군주제를 시행하는 나라다. 우리나라와는 1959년부터 수교했으며 6.25때는 덴마크, 노르웨이와 함께 우리나라에 의료지원을 해 준 고마운 나라다. 또 이 나라는 지도자들이 청렴하고 검소해서 국민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우리의 위정자들도 여기서 본을 받았으면 좋겠다. 국회의원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국회의원 6명이 1명의 비서를 공유하고 있다니 본받을 일이다.
스웨덴 왼쇠핑에서 4시간 정도 이동해서 수도인 스톡홀름에 도착했다. 스톡홀름은 북구의 베네치아라 불릴 만큼 넓은 수면과 잘 연결된 운하로 유명하다. 도시계획이 잘 돼 있어 아름다운 호수와, 나무, 잘 정돈된 건물 등으로 녹색 도시가 됐다. 특히 이 도시에서 노벨상 제정자인 노벨이 태어났다니 이런 이름 난 곳에 와 보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감라스탄 지구는 스톡홀름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해 있다. 이곳엔 왕궁, 대 광장, 대성당, 노벨박물관 등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스톡홀름 시청사에서는 매년 노벨상 수상식이 치러지고 있다. 평화상은 노벨의 유언에 따라 오슬로 시청에서 수상식을 치른다.
스톡홀름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은 '바사' 박물관이다. '바사호'는 가장 오래된 전함으로 바사 왕가의'구스타프 2세'가 재위하던 1625년 건조되어 8월10일 처녀항해 때 침몰한 비운의 전함이다. 1956년 발견해서 침몰한 지 333년만인 1961년 인양되어 바사 박물관에 전시됐다. 이 전함은 원형을 98%나 복원됐다고 한다. 배 안에는 지금도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현재 스웨덴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이를 두고 전화위복(轉禍爲福)라고 하면 적당한 표현이 될 것 같다. 그때의 화가 지금엔 복으로 변해 후손들이 관광수입을 올리지 않는가? 또 그때의 조선 기술이 '얼마나 우수했던가?'를 산 증거로 보여주고 있다. 또 실패 원인도 분석해 보고 도약의 발판으로 삼으면 될 것이다.
저녁이 되자 우린 서둘러 유람선 탈린크(TALLINK)에 승선했다. 밤 새워 에스토니아로 이동하기 위해서다.
이번 여행의 백미가 바로 크루즈 승선이다. 호화로운 시설이 호텔보다 낫기 때문이다. 많은 부대시설이 있어 더욱 즐거운 시간이다. 이번엔 면세점에서 선물도 사야할 것이고, 나이트나 카지노장에도 가보고 싶다. 크루즈에는 무엇보다 식사가 호화판이다. 많은 종류에다 질도 높아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다.
Ⅵ. 동화의 나라 에스토니아
9세기 바이킹이 침략해온 이후 덴마크, 스웨덴, 러시아의 침공을 받았다. 이는 지리적으로 발틱 3개국 중 핀란드, 러시아와 인접해 있으므로 교통의 요지 즉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위치가 중국으로 가기 위한 관문이라 일제 침략을 받은 것과 비슷하다. 국토의 크기도 남한 땅의 반 밖에 되지 않으니 독립국이 된 것도 얼마 전의 일이다. 1991년 8월에야 러시아에서 독립해 국제적으로 독립을 승인 받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의 수교도 독립된 그해 10월에 이루어졌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발트해 연안의 항구 도시로 중세풍의 건물과 성곽들이 아름다운 도시를 이루고 있다. 이 도시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툼페아 언덕에서 조망한 탈린은 붉은색 지붕들로 그림같이 아름답다. 올드 타운으로 알려진 구시가지는 나지막한 고딕지붕에 붉은색 기와가 올려져있다. 탈린은 언덕위의 도시와 해변 쪽의 다운타운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 구역 사이에는 높고 기다란 성벽이 있고, 사이에 좁은 골목이 있다. 툼페아 지역은 귀족이나 왕족들이 거주하는 지역이고 아래 지역은 상인을 중심으로 평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상업지역인 다운타운 지역도 지금은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자그마한 가게들이 장신구 등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팔고 있다. 여기서 호박 반지 하나를 사고 싶었는데 사지 못해 후회스럽다. 쇼윈도에 진열된 옷가지들도 모두 탐나는 물건들이라 사가고 싶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는 패키지여행이라 그럴 수가 없다. 중심지인 시청 앞 광장은 14세기 초부터 외국 손님을 맞이하는 일과 파티 축제장이 됐단다. 심지어 여기서 죄인을 처벌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탈린은 오랫동안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오면서도 옛 건물을 복원하고 고유한 전통 문화를 지켜왔다. 탈린은 한마디로 그림 같은 도시요,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아름다운 도시다.
정이 가는 작은 나라의 아름다운 도시 탈린을 떠나 다시 국경을 넘었다. 올 때처럼 다시 러시아 국경에서 까다로운 검열을 마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동했다. 여기서 투어를 마치고 인천 공항으로 돌아갈 것이다. 대한 항공 직항을 탈 수 있는 곳이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니까.
11박 12일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북유렵은 모든 나라가 청정지역이다. 그리고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들이다. 그래서 교육과 의료가 무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생각은 생각을 낳아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다리가 떨릴 때 여행을 가지 말고 가슴이 떨릴 때 여행을 떠나라는 말이 생각난다. 아직도 마음은 청춘이다. 앞으로도 시간 있으면 또 떠날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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