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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겨울호 시세계 계간평

<시세계 2015, 겨울 호 계간평>

 

관념을 무너뜨리는 감동의 시를 찾아서

김전(시인, 문학평론가, 본지 상임편집위원)

 

새로운 한 해가 밝아 왔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는 선인들의 말씀이 새삼 느껴지는 것은 나이를 먹은 탓일까? 허무의 그림자가 엄습해 오는 느낌이다.

그러나 문학을 하는 사람의 숨결소리를 듣는 것은 너무나 행복하다.

무수한 시인들이 쏟아내는 영혼의 불꽃들이 이 겨울을 데우고 있다.

시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쓰는가?’의 질문에 명료한 답이 있을 수 있겠는가?

각자의 나름대로 해석하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학은 개성적이고 주관적이라 말할 수 있다.

새로운 눈으로 창조적인 것을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것이 시인들의 책무일 것이다.

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감동을 주고 공감을 주고 재미를 주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독자가 없는 문학은 존재할 수 없다.

지난 계간 시세계에서 관념을 무너뜨리고 제 목소리를 실어내는 시들을 살펴보자.

원로시조시인 이상범 시인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청량하게 들린다.

 

소리를 짊어지고

 

누가 영()을 넘는가

 

이쯤 해 혼을 축일

 

주막집도 있을 법 한 데

 

목이 쉰 눈보라 소리가

 

산 같은 한을 옮긴다

 

이상범 <남도창 南道唱> 전문

 

단시조로 되어 있는 정형시이다. 보이지 않는 소리를 어떻게 짊어질 수 있단 말인가? ‘목이 쉰 눈보라 소리에서 공감각 표현, ‘ 산 같은 한을 옮긴다.’ 는 과장법 등이 이 시를 깔끔하게 마감하고 있다. 남도창은 한마디의 군더더기도 없이 잘 표현해 내었다. 관념을 무너뜨려야만 시는 빛나는 것이다. 애절한 남도가락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하다.

 

도예 실습장에서

진흙 한 줌 쥐어보니

어머니 베적삼에 배어난

찌릿한 땀 냄새가

코끝에 묻어났다

 

풍장을 원했던 어머니

흙으로 되돌아와

가닥가닥 흩어진 시간들

움켜쥐고 냄새를 맡으니

찔레꽃 보다 향기로운

어머니 사랑이

가난을 닮은

보리떡 냄새를 풍긴다

강성숙<진흙 한 줌 쥐어보니> 전문

진흙 한줌을 쥐어보고 상상력이 끝 간 데 없이 뻗어나간다. 마지막은 어머니 사랑으로 귀결된다.

가닥가닥 흩어진 시간들/ 움켜지고 냄새를 맡는다.’ 시간의 냄새를 맡을 수는 없다

시적인 표현에서만 가능하다. 마지막 부분 어머니 사랑이 /가난을 닮은/ 보리떡 냄새를 풍긴다. 흙에서 이런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관념을 무너뜨리면 시는 한층 더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한다. 진흙 한 점에서 이런 상상을 해 낼 수 있는 시인의 감각이 예사롭지가 않다.

 

미국에서 제자가

페이스북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열두 명의 웃음소리가

화면에서 뛰어나온다

사과꽃 웃음소리를 활짝 듣는다

 

콘서트를 끝냈다니

노래하는 미소 천사들이다

높고 낮고 길고 짧은 음률 속으로

날아든 사과꽃 하양 나비

 

나는 모래꽃술 머금고 취해버렸다

김종기< 사과꽃 웃음 소리> 전문

 

여기에서 열두 명의 웃음소리가/ 화면에서 뛰어나온다.’ ‘사과 꽃 웃음소리를 활짝 듣는다.’

나는 모래꽃술 머금고 취해버렸다.’ 관념을 뛰어넘는 이런 표현들이 시적 쾌감을 맛보게 한다.

시는 함축적 언어이다. 이 시에서 문화의 이기(利器) 페이스북을 통해 제자들이 보내준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시적인 표현들이 재미를 더해 주고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몸속의 혈액은

마음으로 정화시키고

뼈는 슬플 때

눈물을 흘려야 한다

 

눈은 꽃보다

뿌리를 먼저 보고

 

마음은

파도 속에서도

중심을 지켜야 한다

 

비로소 영혼의

말문이 열리는 것이다.

 

조상현<시인의 조건> 전문

 

시인이 되기 위한 조건은 매우 까다롭다. 뼈가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하고, 눈은 뿌리를 먼저 볼 줄 알아야 한다. 마음은 파도 속에서도 중심을 잡을 수 있어야 영혼의 말문 즉 시가 열린다고 하였다. 깊은 사유에서 나온 시이다. 여기에서도 뼈는 슬플 때 눈물을 흘려야 한다.‘에서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뼈는 도저히 눈물을 흘릴 수 없다. 시인만이 흘릴 수 있다.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이기 때문이다

 

국수가 채반에서 하얗게 웃고 있다

그것에 한 똬리 수북하게 담고, 바다 한 스푼

심줄 훤한 김치 몇 조각 얹으면 봄

여름 가을이 어룽거린다

 

모두 긴 일생을 나누는 수행자다

 

맑은 장국에 덤으로 얹는 고명

부족하면 얼마든지 더 드세오

목소리에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외롭거나 혹은 넘치거나

남몰래 국수를 갖다 놓은 사람이나

수만 리 바닷길을 건너온

바람의 야윈 뱃구레에도 달덩이로 빚는

국수 한 그릇

 

국수사리에서 부처가 쏟아진다.

 

김미형<낙산사 무료 국수 공양간에는> 전문

 

위 시는 배고픈 자에게 무료로 주는 급식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해 놓았다.

국수가 채반에서 하얗게 웃고 있다.’ ‘국수사리에서 부처가 쏟아진다.’ ‘목소리에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일상의 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1: 국수의 모습 2: 국수는 수행자 3: 국수의 배급 4: 국수의 모습 5: 국수는 부처이다.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자가 바로 시인이다. 별것 아닌 것을 시적으로 묘사하여 독자에게 감동과 공감 그리고 재미까지 덤으로 얹어 주고 있다.

 

안국역 지하계단

남루한 사내가 구걸을 하고 엎드려 있다

곁눈으로 힐끗 보고

난 바람처럼 지나쳤다

 

어디쯤 갔을까

스치듯 다가오는 느낌이 있어

오던 길을 되돌아 뛰어갔다

 

예수는 이미 그 자리를

뜨고 없었다.

 

이상익 <예수를 놓치다> 전문

 

우리들은 흔히 지하철역 앞이나 시장가에 가 보면 엎드리고 있는 걸인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치고 만다.

다시 돌아가 보니 걸인이 없어졌다. 걸인을 예수님으로 보는 시인의 생각이 깊다.

일반적인 관념을 바꾸는 시적 기교야말로 시를 살아나게 만든다. 그래서 시인을 언어의 창조자라 하지 않는가?

 

어느 날 불쑥 손님이 찾아왔다

나 여기 있소

제 집인 양 휘젓고 다니는

불쾌한 손님이다

언제부터인가

슬며시

자리를 내 주고

뒷짐 지고 있는 모양이라니

만질 수도 삼킬 수도 없는 뜨거운 불덩이

조용히

안아 사랑해주리라

홀로 외로웠을 너를

 

이영란 <> 전문>

관념어를 구체적으로 이미지화 시켜 놓았다. 의인법으로 처리하여 구체어로 만들어 놓았다.

불덩이 같은 화도 사랑할 수 있는 화자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화를 이미지화 하는 능력과 시인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다.

넉넉한 화자의 정신적인 자세도 믿음직스럽다.

시 전체가 관념을 무너뜨리는 시적인 기교가 예사롭지 않다.

 

아랫목엔 앓는 아기 윗목에는 푸닥거리

아침에 눈떠보니 얘기 얼굴 안 보인다

울 아기 가녀린 혼불 초가삼간 떠나간 듯

 

이 밤도 소쩍새는 피 토하여 울어대고

산비둘기 설운 노래 어매 가슴 멍드는데

까만 밤 밝혀보려고 박꽃은 피나 보다

 

나이 들고 생겨버린 객쩍은 버릇 하나

밤하늘 쳐다보며 별을 헤기 시작했다

내 동생 땅꼬마별을 오늘밤엔 찾으려나.

 

김동한 <초우2 ,初雨 > 전문

 

한 편의 시골 풍경화가 떠오른다. 아기의 죽음과 슬픔 그리고 그리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3수로 되어 있는 연시조이다. 첫 수에서는 아기의 죽음 둘째 수에서는 아기 죽음에 대한 슬픔 셋째 수에서는 아기에 대한 그리움을 묘사하고 있다.

까만 밤 밝혀보려고 박꽃은 피나 보다.’에서 관념을 무너뜨리고 있다.

시조는 형식에 따라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시조는 여기에 부합된다.

 

오이소 보이소에 사이소가 넘쳐나고

몸 비틀며 다니는 길 물씬 매인 바다 내음

치열한 삶의 자세에 경배하오 자갈치

 

태양 같은 뜨거움이 파도처럼 출렁이고

살아 있는 시간들이 굼실대며 활보한다

산다는 건 참 숙연함을 보여주는 자갈치

 

주객들의 불콰한 봄조차 정겨웁게 느껴지고

아지매의 얼굴에는 빛이 있고 훈풍 있어

부산의 허파꽈리인 이곳 일러 자갈치

 

최진태 <자갈치> 전문

 

생동감이 넘치는 자갈치 시장의 모습을 잘 묘사하였다. 한마디로 퍼덕이는 생선들의 모습을 뚜렷하게 각인 시키고 있다. 부산 아지매의 사투리 소리, 파도소리, 주객들의 정겨움까지 융합되어 한편의 풍경화를 이루고 있다.

시조는 형식을 잘 지키면서 내용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되어야 한다.

3수로 이루어진 연시조이다. 시조의 종장은 3,5,4,3 인 데 3은 불변이고 55이상 8이하 그리고 4 ,3+1, 1까지 허용된다. 그런데 둘째 수 종장을 보면 산다는 /건 참 숙연함을 /보여주는 /자갈치로 끊는다고 생각하면 어색하지 않을까? ‘산다는 건/ 참 숙연함을 /보여주는 /자갈치해야 맞는 것이다. 그렇다면 후자에서 이루어지는 형식은 4, 5, 4, 3으로 조금 어긋난다. 시조에서 중요한 것은 종장이다. 시조를 쓸 때 종장을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잘해보자 능청 떨고

 

뼈를 깎고 또 깎으니

뼈가 없는 문어 됐네

 

뒤엉켜

입씨름하는 꼴

차마 보기 흉하네

 

나라 걱정 뒷전으로

파벌 다툼 끈질기고

 

너는 너고 나는 나고

너 죽고 나살자

 

민초는

어이하라고

편 가르기 싸움만

 

정신 차려 꼴뚜기야

망둥이들 소리친다

 

바다가 철썩 철썩

맞 좀 볼래 호통친다

 

등대가

불 밝히면서

평화롭게 살잔다.

 

홍재신<대왕 문어>

 

정치가들을 빗대어 문어를 내세웠다. 모두들 민초들을 내팽개치고 파벌싸움만 몰두하는 정치가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교훈적이긴 하나 시적인 맛을 찾아보기 어렵다. 너무 설명적인 것이 아닌가? 관념을 무너뜨리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시조는 시절을 노래하는 것이다. 역사적인 의식 속에서 시인의 예리한 눈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러나 그 속에 문학적인 표현기교가 들어 있지 않다면 시적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교훈적인 것이라도 에둘러서 넌지시 나타내는 것이 어떨까?

시조는 민족시이다. 국민시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본다. 시조도 시이기 때문에 문학적인 본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보고파 그렸더니

한설을 뚫었구려

 

수줍어 숨긴 몸은

향기로 피었구려

 

눈물에 몸을 숨기고

몰래 살짝 왔구려

 

그리워 불렀더니

하얗게 답했구려

 

수줍은 여인으로

촉촉이 젖었구려

 

바삐온 다른 사연은

말을 하지 말구려

 

이원구 <설중매> 전문

 

이 시조는 설중매를 묘사하였다. 춥고 추운 겨울을 뚫고 올라온 끈질긴 설중매의 모습을 사진 찍듯 그려놓았다.

그리고 각 연 끝 마디마디 마다 구려를 넣어 각운을 살리는 점은 훌륭하다. 시조는 정형시이며 율의 문학이다. 읽을 때 가락이 나타나는 것은 시의 본질이다

시제는 매개물이다. 설중매라는 탈을 쓰고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내어야만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표피적인 사물을 그리지 말고 내면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관념을 무너뜨리는 과감한 모습도 보여주길 바란다.

 

 

시는 일상적인 관념을 무너뜨리는 데 있다. 시는 새로운 이름 붙이기이다. 시인은 오감을 활짝 열고 내면의 깊은 샘터에서 영혼의 물길을 퍼 올려야 한다.

겨울 호에서도 많은 수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면 관계상 다 언급하지 못한 점 죄송하게 생각 한다.

이 시대에는 변화의 시대이다. 변화를 이끌어 내고, 밝은 사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인간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 감동은 문학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감동과 공감 그리고 즐거움은 문학이 주는 최대의 선물이다.

꽃 피고 새 우는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시전문지 계간 시세계에서 감동과 공감을 주는 작품들이 와르르 진달래꽃 쏟아지듯 환한 모습으로 다가오길 기다리며 필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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