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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2015가을호 시세계 계간평

2015-가을 호

계 간 평

 

메타포 그리고 에스프리가 번쩍이는 시를 찾아서

김전(문학평론가. 본지 상임편집위원)

 

가을 호의 시세계는 넉넉한 어머니의 가슴처럼 풍성한 작품들이 들어 있었다.

그 뿐 아니라 문학사를 빛낸 인물 이수화편이 무게를 더해 주었고 시세계 문학상 대상에 박철언 시인 본상에 김성호 시인 해외문학상 대상에 한승덕 시인의 작품이 본지를 화려하게 빛내 주었다.

시는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데 있다. 감동을 주고 재미를 보태어서 독자와 공감하는 시가 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시는 예술이다. 예술은 미적 쾌감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미적 쾌감을 불러 오기 위해선 메타포와 에스프리가 요구된다. 이번호에서는 여기에 초점을 두어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전쟁 때

한반도를 누비던 군용 지프 한 대

덩그러니 놓여 있는 전시장엔

양수 철교에 떨어지던 폭탄 소리가

녹슨 채 묻어 있다.

 

아직 쓸 만합니까?

시동은 걸릴까요?

 

미 야전 사령부가 있었을 법한

대형 텐트도

골동품처럼 전시되어 있다

텐트 안 식탁에서 커피 마시던 소리가

얼룩져 있다

 

아직 쓸 만합니까?

 

유통 기한이 지난 사내 하나가

여기저기 둘러보며 묻고 있다

 

김민홍 <아직 쓸 만합니까> 전문

 

한국전쟁 기념관을 둘러보고 쓴 사물시라고 볼 수 있다. 공감각으로 이루어진 표현들이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폭탄소리가 녹슨 채 묻어 있다’ ‘커피 마시던 소리가 얼룩져 있다에서 청각과 시각의 공감각적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져 있어 음악적 효과 까지 더해져서 시적쾌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사내 하나가 여기저기 둘러보며 아직 쓸 만합니까?” 라고 묻고 있다. 재미를 더해 주고 있다.

여기에서도 자신을 돌아보라는 에스프리가 번뜩이고 있다..

 

 

참숯구이 오리집에서 네 식구 밥 먹습니다 참 오랜만에

벌겋게 타는 숯불로 세상에 젖은 마음을 말리며

톡 쏘는 흑갈색 콜라처럼 식구들 어깨 두드려주는 한 마디

죽비같이 후려지치기보다 무심한 오리고기가 살점이 되어

어느 시인처럼 산이 오지 않으면 내가 가면 되고

길이 없다면 만들어서 가며 된다며

서빙 아가씨의 정강이가 몇 번 지나갈 무렵

그냥 뒤집는 살점이 기름을 튕기면서 묻는다 밥값 했느냐

그래, 저 숯도 예전에는 가지마다 유월 햇살 같은 청춘 흐드려졌을 터

이월춘<부엉이는 밤에 운다> 전문

 

식구들의 회식에서 쓴 생활 시이다. ‘벌겋게 타는 숯불로 세상에 젖은 마음을 말리며공감각적 이미지로서 지나온 삶의 여정이 어려웠음을 넌지시 알려 준다. 죽비처럼 내리치기보다 오리 고기 살점처럼 포근한 사랑으로 감싸라는 시적화자의 따스한 마음이 엿보인다. ‘오리 고기 살점이 밥값 했느냐숯불도 예전에 유월 햇살 같은 청춘이라고 일러주고 있다.

다양한 생각을 갖게 해 주는 구절이다. ‘청춘을 흐드려 졌을 터에서 문장을 마감하지 않고 열어둔 이유는 무엇일까? 독자에게 상상력을 두기 위함이다.

시는 독자들에게 생각하는 여백을 두어야 한다. 여기에서 신선한 작가의식이 들어 있다.

이 시에서도 비유가 재미있게 읽혀진다. 메타포가 들어간 시는 읽을수록 재미와 감동을 준다.

 

 

그 언제

만나자는

기약도 없었는 데

 

너 이렇게

! 이렇게

말도 없이 찾아와서

 

한밤을

혼자 지새우고

돌아가는 눈썹달아

 

나 또한

그 언제

너를 아주 잊었던가?

 

바람결에

언뜻언뜻

들려오는 너의 소식

 

차라리

두 귀를 막고

지는 달만 바라봤지

 

장정문<눈썹달> 전문

 

초생 달을 보고 쓴 시조이다. 시조는 정형시이다. 정형시는 형식과 내용의 조화로움이 생명이다.

형식에 어긋남이 없는 정격시조이며 내용도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흘러가는 가작(佳作)이다

의인법으로 달과 대화 하고 있다. 시인만이 달과 이야기 할 수 있다. 말없이 찾아와서 한밤을 지새우고 쓸쓸히 돌아가는 눈썹달에 대한 쓸쓸함이 묻어 있다.

마지막 연에서 차라리 두 귀를 막고 지는 달만 바라봤지에서 소식을 듣고 싶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욱 기다려지는 소식을 듣고 싶다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시를 살리고 있다.

환하게 떠오르는 이미지의 생동감과 에스프리가 이시에서 떠오른다.

 

 

비바람에 꽃 핀다지만

찬 이슬 무서리에 꽃은 진다지만

 

이지러진 낮달은 어디로 가고

흰머리 갈대밭 위로는 나는 저

까만 새는 또 어디로 가나

 

흥건했던 눈물 없고

미움의 사랑의 흔적도 가뭇없이 사라지고

 

이제는 노을빛 장천(長天) 바라보며

시든 가슴에 그어보는 십자가

그것이 마지막 소망이요 간구일 줄이야.

 

정흥도<병실 창가에서> 전문

 

인생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쉼 없이 흘러간다. 흐르는 세월 따라 늙어가고 늙어 가면 병이 온다. 이 시에서도 메타포가 반짝이는 사금파리로 떠오른다. 첫 연에서 온갖 시련 속에서 인간은 살아가고 무서리 같은 시련 속에 사라지기도 한다. 비록 꽃으로 표현했지만 인간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갈대밭 위로 나는 저 까만 새갈대의 흰 색깔 그리고 까만 새는 무엇을 비유했을까? 인생의 늙은 머리칼과 어둠 속으로 빠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오버랩 시키고 있다.

죽음에 임했을 때는 미움과 사랑도 벗어놓고 십자가만 바라보고 살아가겠다는 지적화자의 마지막 간구가 담겨져 있는 시이다.

삶의 진솔한 표현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준다. 그리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일년 열 두달 젖어 있는

구름의 눈물로

옥구슬 굴리는 벌거숭이

나는 모래밭의 신사

 

깜짝 세상

눈치 보며 살다 보니

휑하니 커진 눈

 

썩은 세상

요리조리 넘다 보니

뼈대만 앙상

 

모래처럼 넘쳐나는

떡판도 고물도 없이

잡념만 먹고 사는

나는 냇물 속의 신사

문영호<모래무지> 전문

모래무지는 모래와 자갈이 섞여 있는 곳에 서식하며 모래 속에 몸을 묻고 머리만 내어놓고 숨 쉬는 수서곤충류에 속한다.(Daum 백과사전) 모래무지를 모래밭의 신사라고 묘사 했다.

시적 화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모래무지를 내세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다.

자화상을 그려 놓은 시라고 볼 수 있다. ‘썩은 세상 요리조리 넘다 보니 뼈대만 앙상하다고 하였다.

자신은 잡념만 먹고 사는 존재라고 했다. 어쩌면 인간은 누구나 잡념 속에 파묻히기도 한다. 잡념은 또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도 한다.

메타포가 없는 시는 생각을 확산시킬 수 없다..

이 시는 자화상을 표현했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반추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작가의식과 주제가 분명한 시이다.

 

 

내가 등짐 지고 오르막을 오를 때

매미 저도 땀을 뻘벌 흘리는 듯 하였다

내가 등짐 벗고 산마루 큰 나무 그늘에 쉴 때

매미 저도 냉수 한 사발 마신 듯 했다

매미 고 조그만 것이

내 마음을 아는 거이 신통하다

매미 저도 10년 면벽(面壁)하여

우화등선(羽化登仙)하였으니

왜 아니 그러랴 싶다

 

권병수<이신전심(以心傳心)> 전문

이심전심은 석가가 가섭에게 설법을 하였을 때 가섭이 웃는 모습을 보고 석가가 이해했다는 데서 유래 되었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심오(深奧)한 뜻은 마음과 마음에서 서로 통한다는 뜻이다.

이 시에서 시적화자와 매미가 서로 뜻이 마음으로 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이 시는 신선하다. 매미와의 말없는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자신의 생각을 시로 승화시켜서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그리고 재미를 주고 있다. 사물을 보고 의미를 붙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시인의 길이라고 여겨진다.

 

 

시든 부추같은 육신

주검처럼 던져

잠시 떠나는 여행

 

숯불같은 태양도

숨 멎을 것 같은 바람도

아무렇지 않은 시간

 

그늘을 거둔 나무도

비우고 다독이는

꿀물같은 오수

 

김영주<낮잠> 전문

낮잠을 비유적인 표현으로 나타내었다. ‘시든 부추 같은 육신을 끌고 가는 게 인생이리라 그러나 모든 걸 내려놓고 꿈속에서 단꿈을 꾸는 오수만은 행복할 것이다. 33연으로 이루어진 시이다. 깔끔하게 이루어진 시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시이다.

마지막 연 그늘을 거둔 나무도/ 비우고 다독이는/꿀물 같은 오수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쪽파 두 단을 골랐다

장바구니 속에 담겨진 매콤한 눈물이

무겁게 앞을 가로 막는다

 

좀처럼 내려올 줄 모르는 기세등등한 물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당당하게 지면을 차지한

경제신문 한 장을 펼치고 그 위에 파를 풀어놓았다.

 

겉잎 두 겹을 제치고 야윈 속을 들여다 본다

밭에서부터 도심으로 이어진 가닥가닥 애타는 소리

적당이 버무려도 눈물 나는 세상

불안한 일상을 뒤척이는 숨죽은 파김치처럼 우리는

절여진 가슴 늘 붙잡고 산다.

 

이오래 <파김치> 전문

 

파김치를 통하여 삶의 현실을 반영시킨 수준 높은 작품이다.

단순한 일상생활을 통하여 시적 쾌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장바구니 속에 담겨진 매콤한 눈물’ ‘경제신문 한 장을 펼치고 그 위에 파를 풀어놓았다’. ‘적당이 버무려도 눈물 나는 세상등에서 삶의 현실이 무겁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마지막 행에서 불안한 일상을 뒤척이는 숨죽은 파김치처럼 우리는/ 절여진 가슴 늘 붙잡고 산다.’ [서 삶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다. 파김치 담그기를 통하여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시적 기교가 놀랍다. 이 시에서 감동과 함께 공감을 주고 있다. 그리고 재미를 더해 주는 좋은 작품이라고 느껴진다.

 

청노루 눈빛 닮은 찔레꽃 터진 산골

자귀화 색동 그늘 황소울음 듣고 있다

두견이 애끓는 울음 또한 봄은 저물고

 

황보리 넓은 벌을 시름이 걷는 시간

그 무슨 그리움에 꽃비가 쏟아지나

피끓듯 지는 낙조가 두루 백리 타는 데

 

이종갑<가는 봄> 전문

 

서경시이다. 감각적 이미지가 시를 생동감 있게 만들어 준다. 형식에 맞는 정격시조이다. 시조는 형식이 있기 때문에 자유자재료 상을 펼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형식과 내용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시적 기교가 예사롭지가 않다. 가는 봄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아름다운 봄의 정경이 또렷한 이미지로 떠오른다.

사물을 그리는 데서 그친다면 독자에게 감동을 주기가 어렵다. 작가의 의식이 들어가야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진다 해도 사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시 전문지 시세계는 문단에서 권위 있는 잡지로 통한다. 거기에 걸맞게 이번호에는 좋은 작품들이 풍성하게 실렸다. 모두 다 언급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메타포가 시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에스프리가 들어 있어야 한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시는 감동. 그리고 공감과 함께 재미를 주어야 한다.

가을이 익어간다. 그리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단풍으로 화장을 하고 마지막을 아름답게 태우려는 저녁놀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스스로 살기 위하여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들의 지혜를 본받아야 한다. 우리도 나뭇잎처럼 거짓을 털어내고 앙상한 뼈대로 자존을 지키면서 겨울의 아름다움을 말해 보자.

앙상하지만 옹골차게 여문 겨울 바위 같은 시가 보고 싶다.

그래서 겨울을 기다린다. 한층 더 단단한 시로 무장한 시세계겨울 호를 기다려 본다.

시 전문지 시세계가 시인들에게 사랑받는 잡지로 자리매김하길 바라면서 필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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