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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및 문학평론

나의 삶 나의 문학

 

나의 삶 나의 문학

김전(시인 · 문학평론가)연보

(사회 활동)

1949년 경북 의성 출생

1983 공주대교육대학원(국어교육) 수료

1980 영주여중, 풍천중, 예천중, 풍양중, 동명고, 구미신평중, 안평중, 구미정보고 교사 역임  

2003~2005 춘양중 선주고 약목중 교감 역임

2008~2011 단산중, 구미옥계중 교장 역임

2011.8.31 황조근정 훈장 받음 

2012~ 강북신문사 편집위원장

2012~ 2013  경운대학교 입학사정관

2014 한국청소년 지원협의회 고문

2014 대한 장애자 야구협회 고문

2014 대한 소프트볼 협회 자문위원

(문단 활동)

1978~1983 한국문인협회 안동지부 회원 입회

1984~1989 예천 한내 글 모임 회원 및 회장 역임

1985 현대시조(청개구리) 초회 추천

1986 현대시조(겨울분재) 추천완료

1987~ 현재 한국 시조시인협회 회원

1992  계간 시세계” (겨울 산 외4) 자유시 등단       

1993~ 현재 영남시조문학회 회원 및 회장 역임

1993~ 현재 대구문인협회 회원

1986~ 현재 현대시조문학회 회원 및 이사 역임

1994~ 현재 대구 시조시인협회 회원 및 이사 역임

1999   현대시조문학회 좋은 작품상  수상 

2009~ 현재 월간 문학세계편집 위원

2010   7회 문학세계 문학상 (시조부분) 대상 수상

2010   영남시조문학회 공로상 수상

2012   한국문학세상 문예대학 교수(. 시조)

2012   7회 추강시조문학상 수상

2012 문세사람들 동인 창립 회장

2012 시집 겨울분재 상재

2012 현대 시조 문학상 수상

2013 8회 한국문학세상 문예대상(시조부분) 수상 

2013 계간 시세계 상임 편집위원

2014 월간 문학세계 문학평론 등단  

      

 

 

 

 

 

 

 

1. 문학의 뿌리는 튼튼했다.     

     내가 태어나서 얼마 있지 않아 6.25 전쟁이 발발하였다.

우리 어머니는 갓난아기를 업고 피난길을 떠나야 했다. 경북 의성에서 친정인 영천까지 가는 데 너무나 큰 시련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우리아버지는 경찰이기 때문에 늘 초조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은 경남 합천에서 시작하였다. 당시 경찰은 이동이 잦아 이 학교에서 저 학교로 다니다가 고향인 경북 의성으로 가서 졸업하게 되었다. 고향엔 할아버지와 일가친척들과 우리 씨족들이 살고 있는 집성촌이었다.

할아버지는 늘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 교실의 창 너머로 손자의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그리고 교사가 되길 희망하였다.

당시는 생활 현실이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하였다. 그러나 우리 할아버지는 아들 여섯 명에 딸 하나를 두었지만 가정은 돌보지 않았고 방랑벽이 있어 구름처럼 떠돌아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생계는 할머니의 몫이었다. 할머니는 작은 체구에 무척 고생이 많았다.

할아버지는 냇물이 흐르는 경치 좋은 곳에 차일을 치고 한시 백일장을 자주 열곤 하였다. 어린 나는 철도 모르고 신이 났다.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할아버지는 평생을 그렇게 보내고 돌아가셨다. 지금도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할아버지는 서포 김만중, 사계 김장생 선생의 피가 흐르는 듯했다.

광산 김(光山 金)의 올곧은 성격과 문학적 기질은 숨길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김춘수 시인의 방랑벽과 문학의 기질은 우리 조상들이 타고난 숙명인지 모른다. 튼튼한 문학의 뿌리는 나에게도 뻗어 나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글짓기는 훈장처럼 붙어 있었다. 백일장에 나가면 곧장 상을 탔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문예 선수로 뽑혔다.

문학의 뿌리는 그때부터 자라기 시작하였다.


2. 추웠던 그 겨울 에 취했다

할아버지의 뜻대로 난 선생이 되었다. 70년대와 80년대에 너무나 추웠다. 사회적으로 어려웠다. 그때 문학을 하는 김태수 선생과 송영수 선생과 우리는 형제처럼 지냈다.

이 학교에서 저 학교로 떠돌이처럼 돌아다녔다. 문학을 하는 김태수 선생과는 자주 연락을 하면서 지냈다. 소설을 하는 송영수 선생은 소식이 감감했다. 소문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했다. 김태수는 문학을 한다고 사표를 내고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작품을 쓴다고 하였다. 한 번씩 가끔 나에게 불쑥 나타나기도 하였다. 총각시절 하숙방에서 함께 뒹굴기도 하였다. 때로는 학교에 와서 환경정리를 도우기도 하였다. 노래와 그림 재능이 뛰어났다. 그러다가 소식이 없었다.

그리고 소식이 끊긴 지 오래되었다. 29세에 결혼을 하고 안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 집사람은 안동 영호학교에 근무하고 난 영주로 기차 통근을 하였다.

영주 여중 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면서 문예를 지도하였다. 그러다가 어떤 학생이 시집을 한권 갖고 왔다. “북소리라는 시집이었다.

시집을 열자마자 김태수 시집이었다. 신경림씨의 서평이 씌어져 있는 시집이었다. 보고 싶었던 문우 김태수였다. 바람처럼 다니던 그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있는 안동 농아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다. 끊어질 수 없는 친구의 인연인가 보다.

그 날 저녁 우린 술이 몸을 적실 때까지 마셨다. 너무나 반가웠다. 그래서 난 안동문인협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문학 활동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안동 문인협회엔 아동문학가이오덕 권정생 , 시인 김원길, 시조시인 김시백, 권오신, 수필가 임명삼, 시인 임병호 등이 있었다.

암울한 시대에 문학만이 나의 위로가 되었고 문학만이 어머니 같은 따스한 이불이 되어 주었다 . 영주에서도 영주문인협회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러던 중 안동으로 전근을 왔다. 태수는 어느 날 농아학교에 사표를 내고 사라졌다. 소식이 감감하였다. 나도 1984년 경북 예천으로 이동 되었다.

예천에서 동료 김소내 선생을 만나게 된다. 그도 문학을 좋아하고 사회운동을 하는 시조시인이다. 그를 만나게 되어 글 모임 한내에 가입하게 되었다.

난 그 때 등단하기로 마음먹었다. 한내 모임 문우들은 등단에 대하여 부정적인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문학보다 사회개혁 쪽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천에 오면서 한국적인 것이 시조이기 때문에 시조로 등단하기로 결심하였다. 당시 전국 시조 백일장에서 은상과 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래서 85년도 청개구리작품으로 초회 추천을 받았고 86년에 겨울분재라는 작품으로 추천 완료되었다.

당시 심사위원장 유동 이우종 시인에게 많은 칭찬을 받았고 시인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1990년 예천을 거쳐 대구 근교인 동명고로 이동하게 되었다.

대구에 정착하게 되는 해였다. 그 때부터 영남시조문학회(낙강)에 가입하고 시조시인으로 제대로 활동하는 시기였다. 낙강은 당시 한국시조단에 쟁쟁하던 시인들이 활동하는 무대였다.

시조는 정형시이기 때문에 단조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1992년 계간시세계에 겨울산 외 5편의 작품으로 시 분야에도 등단하게 되었다.

시조나 시 모두 홀로서기로 등단하였다, 국어와 문학으로서 밥을 먹고 살아온 나였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문예지도에 공인된 시인이 지도를 하면 그 만큼 학생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선생으로서 시인으로서의 활동은 나에게 행복감을 가져다주었다.

3. 내가 가고자 하는 문학의 길을 묻다.

문학은 나의 삶이다. 지금까지 나를 키워준 문학, 나에게 밥을 가져다 준 문학이다,

그러나 문학에 대하여 자신이 없다. 항상 부끄러움뿐이다. 무엇이 문학인지 솔직히 모르겠다.

인간이 먼저 되고 문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요사이 하늘에 별처럼 쏟아지는 문인들을 보면서 문인된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있다. 금방 등단하여 대가가 된 것처럼 행동하고 인간 됨됨이가 부족한 사람을 보아 왔기 때문이다.

난 각종 문학단체에 가입해도 출입은 거의 하지 않는다. 서로 뜯고 뜯기는 정치판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평생직장이던 학교에서 퇴직을 했다, 이젠 문학의 길에 전념하고 싶다.

몇 년 전의 일이다. 현대시조문학상을 통보받고 거절한 적이 있다. 유명시인들이 받아온 상을 내가 받는다는 게 너무 부끄러웠다.

몇 년간 거절하다 보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혜산 선정주 시인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하면서 간곡히 부탁하기에 상을 받기로 하였다.

시상식을 앞두고 갑자기 선정주 시인이 돌아가셨다. 허일 박사가 대신 상을 수여하였다.

상패에 씌어진 문구가 특이했다.

그 문구가 유언이 되어 나의 가슴을 때렸다. 내가 갈 길이 거기에 담겨 있었다.

명의는 육체만 진맥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내면까지 알아보는 것이리라

시인 역시 인간의 정신세계를 진맥하는 명의라고 볼 수 있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인가를 찾아내는 것이 아닐까

김전 시인은 인간에 대한 해답을 얻어내어 우리 전통문학인 시조의 그릇에 담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 시조는 의 문학인 바 이 에 충실하고 조화를 잘 다듬어 구현하였기에 상을 준다고 하였다.

문학의 길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내는 길이리라.’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면서 글을 쓰고 싶다.

문학은 삶의 문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변함이 없다.

지난달에 터키에 있는 소금 호수를 본 적이 있다. 지상을 향하여 소금을 뿌리고 있었다. 호수에서 밀려나온 허연 소금들이 지상으로 나왔다. 썩어가는 세상을 위하여 눈처럼 뿌리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나는 갑자기 소금호수가 되고 싶었다. 썩어가는 사회에 반짝이는 한줌의 소금이 되고 싶었다.

4. 거울에 비쳐진 나의 얼굴을 보다.   

흩어진 음운들이 석류 알로 박히면서

아이들의 수수의 언어를 쏟아낸다

바람은 시소를 흔들면서 무게를 달아보고

 

미끄럼틀로 오르는 개미들 허리가 아프다

빈 그네들 바람에 흔들리다 잠이 들고

노인들 빛바랜 웃음소리 철봉에서 턱걸이를 한다.

 

아이들이 놀다간 한세상은 발자국이 없다

덩굴나무로 기어오르며 파닥이는 허욕의 몸짓

놀이터 비워진 지구 위는 바람이 들지 않는다.

김전 <놀이터에서> 전문

한마디로 깔끔한 시다. 아이들이 밝게 웃고 실의에 빠진 사람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노인들이 철봉에 매달리는 놀이터를 예리하게 관찰하여 삶의 허무에까지 접근시켜 삶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감동을 준다. 31편의 작품이 깨끗하게 어우러지며 잔잔한 율격을 만들고 있다.

첫째 수에서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놀이터를 제시하고 둘째 수에서는 <개미>로 상징된 서민들의 아픈 삶을 드러내 보이고 셋째 수에서는 형상화된 이미지를 확대시켜 우리 삶의 허무를 일깨우는 구조를 갖고 있다 매우 치밀하다.

또한 이 작품이 의도하는 메시지는 삶의 허무를 새로운 차원에서 조명하여 발자국 없고 지구 위 돌지 않는 상황을 제시하여 삶에 대한 궁극적 회의를 갖게 하는 데 있다. 이것은 결국 생각하는 삶을 지향한다는 메시지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잔잔한 율격과 치밀한 구조 낮은 목소리로 삶의 진실을 건져 올려 새로운 인식의 체험을 주고 있다.

문무학 시인 < 바위마다 시를 넣고. 1996>”

 

 

 

새들이 날아가 버린 도회의 숲은 황량하다

인력시장 마른기침 혓바늘로 날을 세우다

鐵骨들 살을 붙이며 허욕의 키를 세우는 오후

 

허리 띠 졸라맨 개미들 더듬이도 무디어져

허둥대며 기어오르는 캄캄한 빙벽의 시대

구급차 사이렌 소리 되돌아오는 막막함이여

 

무너질 것을 위하여 일으켜 세우는

갈기갈기 찢겨진 도회의 한 모퉁이

길 떠난 도둑고양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김전 <도회의 변방에서> 전문

 

첫 수는 상환 제시 연이다. 새들도 날아가 버린 황량한 도회, 인력시장 마른 기침이 혓바늘로 날을 세우는 도회. 살을 붙이고 있는 빌딩의 철골이나 허욕의 키를 세우는 시간은 오후쯤인 도회이다. 둘째 수에서 허리 띠 졸라맨 개미. 더듬이도 무디어진 개미는 누구일까? 그 개미들이 기어오른 빙벽은 무엇이며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 초 중장의 개미와 종장의 구급차 사이렌 소리는 무슨 관계일까? 낯설게 하기로 숨겨 놓은 이 소재들의 원 관념은 빌딩의 골조에 붙어 하루하루를 꾸려가고 있는 막벌이꾼들과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암울한 현실. 거기다 그들의 목숨이 더러는 경각에 다다라 왔음을 알리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현실을 대변하고 있음은 감지하기 어렵지 않다 앞의 두수가 서경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셋째 수는 초장의 무게로 인하여 서정 쪽이 더 무거운 것 같다. / 무너질 것을 위하여 일으켜 세우는 / 그렇다.

인간이 행위를 통하여 창출하는 모든 것은 결굴/무너질 것을/알면서도 끝없이 쌓아올리는 모래성이요. 바벨탑이 아닐까? 중 종장으로 옮겨가면, 이미 무너져 버린 그 뒤의 모습을 보기라도 하듯이 / 갈기갈기 찢겨진 도회의 한 모퉁이/에서는/집 떠난 도둑고양이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상황을 제시하면서 大尾를 맺고 있다.

리강룡 평론집 <생각의 텃밭에 핀 꽃을 찾아서, 2006 >

 

 

갇혀야 살아나는 핏빛 묻은 새 한 마리

어쩌다 눈물마저 굳어버린 바위 덩이

이제야 저 푸른 강물에 날개를 적실 거냐.

 

눈 감아야 들려오는 고뇌의 침묵 소리

부질없는 절망을 강물에다 띄워놓고

왕방연 앉았던 그 자리 바람이 울고 있다.

김전<청령 포에서> 전문

 

김전 시인 소시집(小詩集)의 작품이다. 그는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작품 그 자체가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共感)과 정감(情感)을 줄 수 있는 작품이면서 한 번도 타작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강원도 영월군 청령 포는 단종의 유배지이다. 청령 포에 갇혀서 살아온 단종의 혼령이 한 마리 새로 변신하여 푸른 강물에 퍼덕이며 날개 짓을 하는 새를 보면서 자유를 얻은 것으로 시인은 보았다. 그 동안 얼마나 외로웠겠는가? 얼마나 마음이 아파겠는가? 이런 것들을 다 헤아리며 쓴 작품이다.

고뇌의 침묵소리가 시인의 귓전에 들려오는 강가에서 절망만 안겨주는 강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금부도사 왕방연이 읊은 시 한 수를 바람이 듣고 있었다.

김전 시인은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롭고 날카로우면서도 유연한 시인이다. 어떤 사물을 만나면 절대 놓치지 않는 정신적 파워를 발휘하면서 그것을 바로 볼 줄도 아는 시인이다.

이렇게 언어를 자연스럽게 경작할 수 있다는 것은 짧은 시간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의 수많은 고뇌와 번민 수만 가지의 아픔과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터득되어지는 문장 진술이며 창작문장의 진가라 말할 수 있다.

 

시인 박영교 (현대시조 2012여름호)
 

5. 글을 맺으면서

   미래학자들은 다가올 미래를 드림 소사이트(Dream society)의 시대라고 한다. 다시 문화의 사회가 온다고 예고하고 있다.

문학만이 사회를 구원할 수 있는 절대자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시인의 책무가 크다고 생각한다. 시인이 사회의 빛과 소금 구실을 하여야 하지 않을까?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인가를 찾아내는 것이 문학이라 생각한다.

무수히 많은 시집들이 쏟아지는데 감동을 주는 시집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너무 메말랐기 때문일까?

우리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는 단비 같은 시인이 그리워진다. 나도 그런 시인이 되고 싶다.

 

 

 

 

 

 

대표작

 

 

코스모스

 

기다리다 지쳐버린 목이 긴 여인이여

 

유년의 강둑에서 바람개비 돌리다가

 

파아란 가을하늘로 날려 보낸 고추잠자리

 

부끄럼에 온통 젖어 말 한마디 못하지만

 

가녀린 몸짓으로 서로를 껴안으며

 

한바탕 넘어졌다가 흔들리며 크는 사랑

 

장작 2

 

 목어(木魚)가 손짓하는 겨울 산사(山寺)

 허공을 휘젓는 도끼 소리

 번쩍이는 불빛 속에

 내 영혼마저 반짝인다.

 

 언젠가 호명(呼名)되면

 돌아갈 그 대 앞에

 뜨거운 눈물이 되고 싶다.

 

 겨울 강을 건너는

 노숙자 아궁이에

 한 줌의 밥이 되고 싶다.

 

 주체할 수 없는

  마지막 사랑

  뜨거운 불꽃으로

  활활 불태우며

  겨울 하늘 불사른다.

 

 

고목(古木)

                                                 

 

흘리고 간 시간의 허리를 휘어잡고

 

휴대폰에서  떠난 이의  이름을 지운다.

 

비워서 가벼운 구름  내 가슴 휘어  잡고

 

서로가 서로에게 버리고 버려지며

 

삶이란 처참하게 부서지며 무너지는 것

 

길 잃은 부둣가에서 생각의 끈이 풀린다.

 

가버린 나날들이 굽어진 길을 내어

 

골 깊은 내 이마에 삽질 하는 저 물길 

 

어쩌랴 마음은 마음대로 엇박자로 흐르는데

 

 

 

백수의 노래

 

그 많던 무거운 짐  어느 항구에 부려 놓고

 

빈병으로 나뒹굴며 갈대처럼 흔들릴 때

 

그 날엔 전화 벨소리 하염없이 울었다.

 

마음은 여느 때나 따스한 새벽이다.

 

지우고 지워 봐도 되살아나는 아이들 소리

 

한바탕 행복감에 젖어  눈을 뜨는 이 아침

 

 

 

 

 

침을 맞으며

 

버거운 하루해가 어깨위에 걸터앉아

 

벗지 못할 나의 지게 운명처럼 짓누른다.

 

아련히 돌아와 누운 폐선의 밤은 길다.

 

무너진 어깨 위에 쇠말뚝을 박는 소리

 

박히면 박힐수록 아픔은 더해가도

 

허전한 그리움들이 산맥처럼 일어선다.

 

월간문학세계 (  2015 1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