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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가을호 계간평

(계간 평)

사색(思索)의 시, 생각의 깊이를 더하다

김전 (시인 문학평론가, 본지 상임편집위원)

 

유난히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 여름이 불타고 있다. 뜨거워야 알곡들이 튼튼하게 영글어 간다. 시련 없이 이루어지는 성공은 없을 것이다.

이 계절에도 뜨거운 열정을 담은 작품을 만나게 됐다. 작품들을 보면서 창작의 땀을 흘리고 있는 작가들을 생각해 본다.

요즈음 같이 어려운 시기에 독창적인 생각으로 새로움을 찾아내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시전문지 시세계여름호에서 좋은 작품들을 만나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다.

그 중에서도 사색의 시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잔잔한 호수 가에서 작은 물결로 다가오는 감동의 시들을 찾아보았다.

먼저 정형시인 시조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잊고 산 사람들이

잊혀질까 싶어서

얼굴마다 분칠하고

장터나온 사람들이

만나는 사람들마다

깨장단 치며 웃다가

 

눈 껌벅 실룩대다가

가뭇하게 눈 뜨고

잃어버린 게 있는 듯

잊어버린 게 있는 듯

자꾸만 뒤돌아서서

바라보는 먼 눈빛들

 

권형하 <저 단풍> 전문

 

단풍을 의인법으로 처리하여 재미있게 묘사하였다. ‘얼굴마다 분칠하고’ ‘깨장단 치면 웃다가

2연에서 의태어로 실룩대다가로 나타내어 재미있게 나타내었다. 그 뿐 아니라 가뭇하게 등, 독창적인 시어들로 시조의 멋을 극대화 시키고 있다.

장터에서 한바탕 벌이는 공연처럼 느껴진다. 읽을수록 새록새록 새로운 맛이 돋아난다.

단풍을 새롭게 생각하는 작품이다. 형식과 내용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성공적인 작품이다.

 

 

 

 

 

 

 

등짐으로 타는 노을

하루 같은 백년을

 

버거운 나그네 길

무거운 발걸음에

 

가랑잎

가을 노래로

묵도하는 저 거사(居士)

 

오는 발길 가는 세월

바깥으로 다독이며

 

빛살진 흰구름에

제행무상(諸行無常)걸어놓고

 

한결로

허심을 열어

천리길을 마름하나

김양수<장승, 將丞> 전문

 

 

장승이 바로 김양수시인 자신이며 居士이다.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로서의 연치(年齒)에 걸맞게 사색의 깊이가 있는 작품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시조이다.

이 시조에서 눈여겨 볼 것은 제행무상이다. 제행무상이란 우주의 모든 사물은 늘 돌고 변하여 한 모양으로 있지 아니한 것을 말한다.

장승은 늘 그 자리에 그 모양이다. 그러나 시인의 눈에는 새롭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티끌 하나 없는 허심의 마음으로 자리 잡고 있는 장승으로 사색의 강으로 끌고 간다.

이 시조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서툴게 삼킨 세월

이제와 돌리고저

 

바람의 양 날개를

감아잡고 매달리다

 

못난 짓

등짐을 져도

내가 좋아 나선 길

 

헛디딘 발자국도

소중한 분신이라

 

노을 진 벼랑길을

눈감고 바라보니

 

저질러

울고픈 사랑

꽃피우고 떠난 길

 

강성호 <노을 길 연가> 전문

 

노을 길은 바로 우리 삶의 모습이다. 삶의 마지막 길에서 되돌아보는 삶의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강성호 시인은 이미지화의 달인이라 할 정도로 그 능력이 돋보인다.

마지막 가는 길을 버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지나고 떠난 길은 아름다운 추억의 길이다.

이 작품에서도 자성적인 삶을 생각하게 한다.

살아가다 보면 헛디딘 삶도 있고 성공한 삶도 있으리라.

마지막 노을이 삶을 불태워 아름다움을 나타내듯 우리의 삶도 마지막까지 후회 없는 삶으로 장식하면 좋지 않을까?

 

 

길 따라 고동치는 세상을 읽는다네

깨끗이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다네

 

인생은 강물이어라

옷깃 여민

저 겸손

 

걸음은 굽이굽이 흐르고 또 흐른다

천년을 찾아간들 가치를 깨달을까?

 

우러러 세상을 보라

하늘에 쓴

진실을

 

구을회 <서도, 書道> 전문

 

구을회 작품도 한마디로 깔끔하다. ‘서도는 깊이 있는 사색의 산물(産物)이라고 생각한다. 초장 중장 종장 3행으로 된 2수의 시조이다.

시조의 율격이 흐트러짐이 없다. 정격시조이다. 첫째 수에서 고동치는 세상’ ‘지혜’ ‘겸손을 통하여 書道에서의 배울 덕목이 나타나 있다. 둘째 수에서는 서도가 완성된 작품을 말하고 있다. 평면적인 서도에서 입체적인 모습으로 잘 묘사하여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첫째 수 초장과 중장에 각운 ~네 종장의 각운 ~라로 맺고 있다. 음악적 요소가 들어 있어 시조의 가락이 음수율과 더불어 운에서도 가락이 느껴진다.

사유가 있는 작품이며 독창적인 묘사로서 시의 멋을 마음껏 나타내고 있다

이런 작품은 깊은 영혼의 샘터에서 퍼 올린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음은 자유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색의 자유시는 생각으리 깊이를 더하고 있다.

 

 

한잔의 차를 마시는 시간에도

마음속 뜰에는

물이 흐르고

꽃이 피고 있습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내 마음에도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 진리의 자리가 되는

참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질마제에 흐르는

시냇물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냥

묵묵히 평화로이 흐르고 있습니다

내 마음과 같이

 

고방규 <내 마음> 전문

 

이 작품은 조용한 가운 데 이루어지는 사색의 작품이다. 1연에서 한 잔의 차를 마시는 시간에도/마음속 뜰에는/물이 흐르고/꽃이 피고 있습니다.’에서 깊은 생각에서 건져 올린 묘사이다.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표현이다.

구조적으로 보면 1연에서 내 마음의 사색, 2연에서 참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 3연에서 질마재에서 흐르는 내 마음

으로 끝을 맺고 있다.

시적자아가 나타내는 관조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생각의 깊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독자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시가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쓰윽 싸악, 쓰윽, 싸악 바람 문이 열리고 닫히는

풀무소리를 들으며

시뻘겋게 이글거리는 불속으로

들락날락 끌려다니다가

수없이 쇠망치에 얻어맞다가

물속에서 푸르죽죽하게 죽어가다가

낫이 되어도 호미가 되어도

찬칼이 되어도 간장막야(干將莫耶)가 되어도

되다가 말아도

시우쇠는 도리가 없다

박주병<시우쇠> 전문

 

시우쇠는 무쇠를 불려서 만든 쇠붙이의 하나이다. 대장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도 깊은 사유에 의해 이루어진 작품이다. 의성어와 의태어가 들어가서 시의 생동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시에서 간장막야(干將莫耶)는 춘추시대 명검을 말한다. 여자의 발톱과 머리카락 그리고 쇠를 섞어서 만든다고 한다.

시우쇠가 뜨거운 불 속에서 들어가 쇠망치에 두들겨 맞고 다시 물속에 식혔다가 낫이 되기도 하고 호미가 되기도 한다. 시우쇠는 어쩔 도리가 없다. 대장장이가 시키는 대로 따라갈 뿐이다.

이것도 생각하는 작품이라고 느껴진다. 단지 시우쇠가 오늘 날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환경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우리의 일상사를 그리고 있다고 보인다.

비유를 통하여 시대를 반영하는 이런 시가 우리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바람의 손길

세월의 숨결

 

머물다

흐른 자리

 

거북 갈래 등

바람을 가르고

 

한 잎 한 잎

하늘 향한 외침

 

굽히지 않고

꺾이지 않는

 

푸른 용기

곧은 절개

 

이 시대

환생한 선비들

 

그들의

천년 꿈 밭을 걸어본다

박희덕<솔숲에서> 전문

 

이 작품은 2행으로 운율을 이루고 있다. 솔숲을 선비로 환치시킨 작품이다. 오랫동안 솔은 우리들에게 절개와 함께 선비를 상징해 왔다.

그 길을 따라 솔이 되고 싶은 시적자아의 간절한 소망이 잘 나타나 있다.

군더더기가 없는 선비들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외침, 꺾이지 않는 절개. 용기 등 선비의 이미지를 최대한 동원하고 있다.

한마디로 산뜻한 작품이다.

조금은 진부한 느낌이 나는 작품 같지만 오늘날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공감을 주는 작품이다. 교훈적인 작품이다.

 

 

 

산사 추녀 끝

바람을 낚으려

풍경을 달면

일렁이는 바람결에

국화향처럼 퍼지는 소리

졸고 있던 산사

잠에서 깨면

오동나무 열매처럼 달린 암새 떼

푸른 대숲으로 숨어들고

행여 누가 올까

산방문을 여는

고승의 손은 문풍지처럼

희미하게 떨린다

 

고은주< 풍경> 전문

 

조용한 산사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바람을 낚으려 풍경을 달면일렁이는 바람결에 국화 향처럼 퍼지는 소리 등 낯설기 기법으로 시의 멋과 맛을 잘 살리고 있다

오동나무 열매처럼 달린 암새 떼’ ‘고승의 손은 문풍지처럼/희미하게 떨린다.’ 등 감각적 표현이 미적 쾌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고요한 산사의 모습을 내면적인 사고(思考)로 잘 뽑아내어 명주실처럼 부드럽게 느껴진다.

깊은 사색의 혼을 갈아 건져 올린 작품이라고 본다. 잔잔한 감동으로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시는 사색의 산물(産物)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을 시적으로 잘 우려내어 맛있게 거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생각을 거듭하고 퇴고하여 하나의 작품을 빚어내는 장인의 정성이 깊이

배어 있을 때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

사색의 시, 깊이 있는 시를 쓸 수 있는 작가는 철학의 바탕이 없이는 쓸 수 없다,

마지막으로 시는 교훈적인 설교가 아니다. 남에게 설득하는 작품은 피해야 한다. 시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시는 직선이 아니고 곡선이다. 따라서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리고 작품을 보낼 때는 계절성을 생각해 봐아 한다. 계절에 맞지 않는 작품은 여름에 겨울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진다.

뜨거움이 용솟음친다. 숨이 콱콱 막힌다. 열매를 맺기 위한 시련이리리라.

시전문지 시세계가 좋은 작품으로 단장하고 있다. 더욱더 시세계를 사랑해주시고, 가을호에는 풍성한 수확으로 속이 꽉 찬 단단한 작품을 기대해 본다. .

시세계가족 여러분들의 문운을 빌면서 필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