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묘사 중심의 시와 진술 중심의 시를 찾아서
김전(시인, 문학평론가)
kumijb@hanmail.net
1.들머리
봄이 왔다. 꽃피고, 새가 울고, 아지랑이가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봄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황사가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이 또한 우리들의 욕망이 낳은 재앙이 아닌가?
봄다운 봄을 맞이하고 싶다. 문학도 문학다운 글을 만나고 싶다. 이 바람은 헛되지 않았다. 이번호에도 좋은 시를 만날 수 있어 기쁘다.
‘시가 묘사인가? 진술인가?’를 두고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묘사는 스토리가 없는 시, 진술은 스토리가 있는 시라고 생각한다. 전자는 노랫말이 주를 이루니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없고, 시간이 흐르면 잊히고 만다. 후자인 경우는 이야기만 있으니 시가 될 수 없다. 시는 노래가 될 수 있어야하는데, 그럴 수 없으니 그것이 문제다.(이승하, ‘시는 진술이여야 하나 묘사이어야 하나’⌜시 어떻게 쓸 것인가?⌟ 2017, 94쪽) 여기서 감성과 이성이 결합될 때 좋은 시가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연친화적인 순수시가 전자요, 지적인 주지계열의 시가 후자이다.
그리움이나 쓸쓸함 같은 자기감정에 치우친 시도 안 되고, 이지적인 관념 편향의 시도 문제가 있다.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결합될 때 좋은 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가슴으로 쓰는 시(묘사), 머리로 쓰는 시(진술)를 균형 잡아 써야 좋은 시라고 된다.’고 하였다.
이번 호에 발표된 작품을 한 번쯤 생각해 보고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어떻게 하면 될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 묘사 중심의 시
이미 꺾인 날갠데
비상은 이미 멀다
구겨진 삶에 채여
바르르
혼이 떤다
운율이 사위어선가
빙벽 차듯
깊은 밤
배고픈 여로에서
신을
흔들어 본다
기우뚱 바로 설까
되잡힌
형률의 덫
가만히 타오른 불빛
칼빛보다
시렵다
채규판 ⌜나비의 춤⌟전문
이 작품은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나비를 통하여 삶을 노래하고 있다.
꺾인 날개- 구겨진 삶 – 운율의 사윔 – 배고픈 여로 –기우뚱 삶으로 나아가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칼빛보다 시렵다.’ 로 끝을 맺고 있다.
희망마저 실종당한 오늘을 묘사하였다. 빙벽, 형률, 칼빛으로 삶의 아픔을 제시하였다.
옹골찬 시의 구조다.
묘사로 나타내었지만 진술도 포함 되어 있다, 깊이 있는 작품으로 공감을 주고 있다.
알알이 영글은
빠알간 속살
햇살이 쏟아지는
가을 하늘 아래
신음인가
비명인가
툭
터지는 너의
붉은 사랑
서흥석 ⌜석류⌟ 전문
석류를 붉은 사랑으로 치환 시켜 놓은 작품이다. 석류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묘사하였다.
석류가 터지는 모습을 실감나게 그려 놓았다.
‘가을 하늘 아래 신음인가. 비명인가’에서는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
묘사로 되어 있지만 새로운 의미 부여를 통하여 감동과 공감을 주고 있다.
군더더기가 없는 작품이다. 한마디로 깔끔한 작품이다.
춘설을 파고드는 뻐꾸기 노랫소리
골골이 펼친 안개 나목을 보듬으니
메마른 가지 끝으로
몽울몽울 뜨는 눈
노랗게 오른 속살 햇살이 눈부신 듯
수줍게 미소 짓다 활짝 핀 화관 쓰고
산골짝 타고 내려와
둘레길이 환하다
따스한 봄볕 속에 움츠린 마음 널고
산수유 길을 따라 마음 꽃 피워 가면
동구 밖 아지랑이 속
틔워놓은 사랑가
정용현 ⌜산수유⌟ 전문
정용현의 산수유도 묘사 위주의 작품이다. 선경후정으로 제시된 작품이다. 뻐꾸기 노랫소리- 몽울몽울 돋는 잎- 화관 (산수유 모습) -산수유 사랑가 로 연결된다.
산수유를 사랑가로 치환 시켜 놓았다. 산수유를 화관으로 비유로 나타냈다. 시적미감이 돋보인다.
봄이 오는 계절에 산수유가 만발한 모습을 묘사하였다. 한편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이미지화가 잘 되어 있는 작품이다.
담장을 타고 넘는 저 뜨거운 욕정
기어코 너를 기억하리라
이글거리는 햇살 온몸으로 받아
무심하게 지나지 않도록
짙은 화장기 어린 주홍빛 뺨으로
미소를 머금나니
네가 나에게 다가와
향기를 맡을 때까지
나의 운명은 너를 향해 가고 있다
단단히 줄기를 묶어 끊임없이
너의 사랑을 확인 하는
사랑 없이 사는 생은 허무하느니
아무도 오지 않는 여름
박수찬 ⌜능소화⌟전문
이 작품도 능소화를 묘사한 작품이다. 작가의 감정이 이입되어 이 작품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능소화를 의인법으로 나타내고 있다.
낯설기 기법으로 ’짙은 화장기 어린 주홍빛 뺨‘ ’단단히 줄기를 묶어’등은 능소화의 모습을 의미 있게 묘사한 부분이다.
욕정과 사랑으로 가득한 내면의 세계를 제시하여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고 있다.
평면적인 능소화를 입체적으로 나타내어 생동감 있게 나타내었다.
묘사에다 자신의 감정을 이입 시켰다.
독자들에게 소곤소곤 대화하듯 정겨운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3.진술 중심의 시
자기 편 아니면 적이라는 걸까
줄을 잡고 줄서 가는 사람들은
같은 줄이 아니면 왜 그렇게 보는지
다른 줄에 서지 않았는데도
줄서기를 싫어해도 안 되고
반드시 줄을 서야만 한다는 건지
물러서서 생각해 봐도
줄서기는 정말 싫다
검은색 아니면 흰색뿐
다른 색은 모두 지워버린 탓일까
흑백 논리로만 들여다본다
자기 논에만 물을 대듯이
다른 물길들 다 막으며 편을 가른다
함께 갈 세상이 안 보이는지
모여도 애써 안 보려 하는지
한참 더 물러서서 생각해 봐도
저 줄서기는 잘못된 것 같다
더불어 그러나 따로 가는 세상을
따로 그러나 더불어 가는 세상을
언제까지 꿈꾸어야만 할는지
언제 그런 세상 오기나 올는지
이태수⌜줄서기⌟전문
오늘날의 현실을 잘 나타내고 있다. 내로남불의 이야기가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내 편이 아니며 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줄을 서야 한다.
흑백 논리에 따라 살아가는 현실 고발 작품이다.
내 편이 하는 일은 무조건 옳은 일이고 적이 하는 일은 무조건 악이다.
입조차 띄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한다.
더불어 가는 세상은 언제 오려나? 그런 세상을 꿈꾸는 시적화자의 기원이 담겨져 있다.
쉽게 이해되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쉽게 쓰인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 작품은 독자에게 깨달음을 주고 있다.
누군가
내 곁에 다가온 것 같아
두 눈 크게 떠보아도
보이질 않고
두 손 모아 귀 기울여도
미동 (微動) 조차 없다
한 줌 쥔 손마저도
아무것도 잡히질 않고
오감(五感)실은
안개구름 떠난 자리
쓸쓸한 낙엽만 뒹굴고
숲속 겨드랑이 할퀴는
바람의 그림자
울어대는 풀피리 소리는
바람의 길 내어 달라고
대지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문운경 ⌜바람의 길⌟전문
바람은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는다. 미동도 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바람은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잠든 민초들을 흔들어서 일깨우는 선각자로 느껴진다.
이 글을 읽는 이에 따라서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의 다의성이 담겨져 있는 작품이다.
독자들에게 많은 상상을 할 수 있게 하고, 깨달음을 주는 작품이다.
‘숲속 겨드랑이 할퀴는/바람의 그림자/울어대는 풀피리 소리’
공감각적으로 이루어져서 이미지화가 잘 되었다.
하늘이 요동치고 대지가 들썩인다
학생이 가르치고 스승이 배우는 곳
뒤틀린
갱도의 막장
다시 설 날 언제일까
상납은 눈을 감고 돈줄은 꿈이다
신도가 설교하고 성자는 용서받아
황금의
장님이 되어
헛된 꿈을 심고 있다
꼼수가 판을 치고 정의는 물러앉아
꼬리가 활개 치니 머리는 힘을 잃어
부메랑
돌아오는 날
다시 한번 뒤틀린다
한병태⌜물구나무 세상⌟ 전문
이 작품은 현실을 역설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학생과 스승, 신도와 성자, 꼼수와 정의가 뒤바뀐 세상을 말하고 있다. 갱도의 막장, 황금의 장님, 부메랑을 나타내어 경고하고 있다.
이 작품은 시조다. 시조는 시절가조(時節歌調)에서 나왔다. 시절에 따라 부르는 노래다.
현실을 직시하고 진술적으로 나타내어 세상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불합리한 현실을 고발한 작품이다. 꼼수가 판치고 정의가 실종당한 현 시대를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한다.
밤이 깊어도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바다에서 아버지와 목숨을 걸었던 트롤어선은
항구에 정박한 지 오래
기다림에 지쳐
뱃머리로 철없던 아들을 보내던
어머니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그 때 나는 형의 손을 잡고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
항구의 끝자락을 향해 걸었었다
무허가 점포는 파도에 단련된
낮은 지붕을 이고 어판장 끝에 매달려 있고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화투패에 또 다른 목숨을 걸고 있는 아버지
어머니의 외상 쌀값과 우리형제의 밀린 육성회비가
아버지의 손끝에서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중략
바다로 떠난 형아를 기다리다 지친
어머니도 떠나버린
빈집에서
오늘 눈물 어린 시 한 편을 쓰게 한다
강동수 ⌜오래된 기억⌟일부
진술적인 시의 백미다. 어부로 일하는 아버지, 화투 패에 목숨 거는 아버지, 어머니의 외상 쌀값, 우리형제의 밀린 육성회비, 등 지나간 일들이 스펙트럼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야기가 있는 작품은 힘이 있다. 가난에 찌든 영상이 한편의 영화처럼 비쳐지고 있다. 앞으로 영상문학이 자리 잡을 것이라 보인다.
이야기가 있는 시는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 이 시는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공감과 재미를 주고 있다.
강동수의 작품 ⌜오래된 기억⌟은 오랫동안 우리가슴 속을 짠하게 울리리라 믿는다.
이제는 아예 소식을 끊어버리고
낙엽처럼 쓸쓸히 이 거리를 저 거리를 떠돌아 다니는가
친구야
단풍 같은 붉은 목청으로 곰삭은 외로움을 호소하던 자네의 그 열정이
오늘따라 갑자기 울컥, 그리움으로 치밀어 오르는구나
그리하여 지금, 지금 그리움이라는 것은
찬바람 껴안고 매섭게 살아 움직이는 바람개비 같은 것이다
가혹한 계절을 견뎌내며 살아야겠다. 살아야겠다. 발버둥 치는 튼튼한 주문(呪文) 같은 것이다
낯선 섬에서 서울로 유학 왔다며
꼭 출세하고 싶다던 청춘의 고백도 슬픈 환청으로 속삭이고 있다
삼십몇 년 전 , 일찍 군대에 갔다가 첫 휴가 나온 자네가
불쑥, 내 단칸방 낡은 문틈으로 보여준 육군 일병의 그을린 살갗도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홀로된 자네가 세상에 맞섰던 삶도,
어느덧 늙어가는 이력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지만,
아, 무엇보다 이제는 어엿한 여인으로 컸을 자네의 딸,
그 딸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며 주룩주룩, 흘리던 눈물은
싸늘한 겨울 허공에 별자리로 뜨고 있구나.
이하 줄임
오석륜 ⌜홀로된 친구에게⌟ 일부
편지글 형식으로 나타낸 작품이다. 이 작품도 독자들에게 감동과 공감을 주는 작품이다.
‘단풍 같은 붉은 목청’, ‘곰삭은 외로움’ ‘그리움은 바람개비, ’가혹한 계절을, 발버둥치는 주문(呪文)‘
‘슬픈 환청’, ‘눈물은 허공에 뜬 별자리’, 등은 비유적으로 나타내어 시적미감을 북돋우고 있다. 스토리가 있는 시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을 수 있다.
독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은 스토리가 있는 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무너져 내리는 초가에
찌그러진 자전거 누워 있고
옆에는 망초꽃 피어 있네
그 사람 누굴까
잠 못 이루는 밤
다리 건너 메밀밭 지나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등불은 희미했고
첫사랑도 희미했지
달은 저만치 내려다보는데
그녀, 그 미운 사람은 아니었어
나는 별들과 함께 바퀴를 굴렀으며
밤이 다 가도록 그녀 집을 맴돌다가
되돌아온 그곳에 지쳐서 누워버렸지
꽃이 피었지
내 곁에 그녀의 모습으로 핀
알 수 없는 웃음으로 핀
하얀 꽃이 피었지
하지만 이미 녹슨 바퀴로는
다시 그녀 곁으로 갈 수가 없었지
장효식⌜망초와 자전거⌟전문
이 작품은 회상을 통하여 이루어진 작품이다. 또 적절한 묘사가 들어 있지만 줄거리가 있는 작품이다. 찌그러진 자전거와 희미한 사랑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랑하는 그녀의 집을 맴돌다가 되돌아 왔지만 그리움이 남아 있다.
그리움이 망초 꽃으로 치환된다. 녹슨 바퀴로 갈 수 없는 애틋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작품도 형상화가 잘 된 작품이다.
한편의 연속극 장면을 보는 듯하다.
4. 마무리
월간문학세계 3월호 (통권 296호)에 게재된 작품 중에 눈에 띄는 작품들이 많았다.
시를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가? 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오늘날 작가는 많은 데 독자는 갈수록 줄어든다고 한다. 그래서 출판사는 문을 닫고 있다.
독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작가에게도 그 이유가 있다. 작가의 눈높이와 독자의 눈높이가 다를 수도 있고,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는 묘사이냐? 진술이냐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묘사는 노래가 되나 감동이 없고, 진술은 감동은 있으나 노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서정주 시인의 말씀처럼 묘사와 진술이 조화를 이루어야 되리라 생각한다. 많은 작가들이 그렇게 쓰고 있으나 다시 한 번 일깨운다.
시는 시다워야 한다. 진솔한 내용으로 시적인 옷을 입혀야 시다운 시가 되지 않을까?
4월호에도 좋은 작품을 기다리며 필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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