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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3월 월평 '체험과 상상, 그리고 느낌을 주는 시'

월간 문학세계⌟ 3월 월평

 

체험과 상상, 그리고 느낌을 주는 시

김전(시인, 문학평론가)

 

 

1.들머리

누구나 좋은 시를 쓰고 싶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기본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시를 구성해야 하는 데 그게 쉽지 않다. 요즈음 쏟아져 나오는 시들을 보면 생각나는 대로 뱉어내고는 시를 썼다고 자랑하고 있다. 또 이런 시에 대해 가르침을 주는 시인다운 시인도 드물다.

80년대 까지만해도 등단하려면 무척 힘들었다. 등단하고 싶은 사람이 작품을 들고 중견 시인을 찾아갔다가 혼만 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어왔다. 설익은 작품에 대해 엄격한 비평을 하며 호되게 꾸짖었다고 한다. 그때는 잡지사도 적을뿐더러 3회가지 추천을 받아야했으니 등단의 관문이 매우 좁았다. 그래서 시 쓰기를 포기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등단이 쉬워졌다. 1회만으로 등단하니까 쉽게 시인이 되는 길이 넓게 열렸다. 이런 이유로 기본이 되지 않은 시인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는 실증이다.

지난해 2월호 월간문학세계에 게재된 시들을 보면 개성적이고 독창적이면서 제 몫을 다 하고 있다.

이번 달에 게재된 시에서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아 체험과 상상으로 감동과 공감을 주는 시를 찾아보았다.

시는 함축적이어야 하고 감각적 이미지, 그리고 비유적으로 나타내어 독자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주어야한다. 여기다 낯설기 기법과 뒤집어 보기, 역설법 등으로 감동을 주는 작품이라면 금상첨화 (錦上添花)라 하겠다.

 

2.체험과 상상, 그리고 느낌을 주는 시

 

 

뼈마디에 바람이 불고

머릿속에 모래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기에

더불어 병원엘 갔다

문득문득 외로워진다는 아내의 하늘은 온통 회색빛이란다.

-

-

모니터를 바라본다

아내의 이름이 불리워지면

뼈마디마디와

심장 속에 숨어 있는 먼지와

머릿속에 박혀 있는 검은 세포들이 드러날 것이다

기계들이 찰칵거리며 찍어낼 것이다

-

-

-고민을 하는 사이 아내는 이미 기계 속으로 들어가고 기계는 찰칵거리며

아내의 세포를 파헤치고 있었다

 

몇 십년 쌓였던 먼지들이

새 떼처럼 하늘로 날아오른다

 

아찔하다

김용언 MRA를 찍던 날일부분

 

일상에서 일어난 일이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면서 느끼는 감정을 표출하였다. 여기서는 체험과 상상이 버무려져서 한편의 작품이 이루어졌다. 촉각, 청각, 시각 등으로 이루어졌다.

두려움을 구체적으로 잘 나타냈다. 병원에 감(회색빛) - 두려움(상상) - 사진 찍기와 상상 사진 찍는 현장 (상상) 으로 구성되어 있다.

몇 십 년 쌓였던 먼지들이/새 떼처럼 하늘로 날아오른다.’ 비유와 상징으로 마무리 하였다.

이런 작품이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공감을 주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못 벗은 미망으로 칠산바다 누비다가

살구꽃 피는 봄날 그물에 걸려들어

고향이 어딘지 모르고

가는 곳도 모르고

 

포근한 건조 조건 해풍의 서해바람

몸을 맡긴 굴비가 마당에 가득하면

볏단이 쌓인 것처럼

배가 절로 부르다

 

황금에 엷은 회색 선홍빛 지느러미

잘 구운 조기 한 상 밥상 위 올라 있어

구미가 절로 당기니

젓가락질 바쁘다

 

만헌 장영규영광 굴비전문

 

이 작품은 정형시인 시조다. 시조의 생명은 형식이다, 형식이 파괴된다면 시조의 존재가치가 사라질 것이다. 700여년을 지탱해온 시조는 우리의 성정에 맞는 민족시다.

3수로 이루어진 연시조로 시간적인 순서대로 구성했다.

상상과 체험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첫째 수: 굴비가 잡힘 , 둘째 수 : 굴비의 말림, 셋째 수 굴비의 맛으로 구조화 되어 있다.

형식과 내용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있는 정격시조다. 초장과 중장에서 배경을 제시하고 종장에서 느낌을 나타내고 있다.

 

 

지나간 시인의 모서리에

세상이 토해낸 시

 

쭈글쭈글한

길이 있어도 보이는 길

탱탱한

말이 없어도 들리는 말

보푸라기

빛이 있어도 보이는 빛

뜨거운 울음으로 깊어진 길

 

헐렁럴렁한 영혼을 버무린 채

가셔도 떠나지 않는

영원한 시의 빛, 시인의 큰 등불

박경리 선생님을 생각한다.

강계희시인이 키워온 말전문

이 작품은 감각적 이미지로 나타냈으며, 상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1연에서 세상의 모서리에 시인이 토해낸 시가 아니고 시인의 모서리에 세상이 토해낸 시라고 했다. 깊은 사고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2연에서는 시인만이 보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나타냈다. ‘쭈글쭈글’ ‘탱탱한’ ‘보푸라기등 구체적으로 나타낸 부분이다.

3연에서 은유적인 묘사로 시적미감을 느끼게 한다.

시인이 키워온 말은 관념적인 것을 구체화 시키는 시적능력을 엿볼 수 있다.

 

아직은 당신 곁에 머물고 싶습니다

이별의 시간이 조금은 남아 있어

지난날 지우려는 듯 단풍물이 듭니다

 

뱉을 수 없는 말 한마디 몰래 지니고

산자락 붉어지면 찔레꽃 같은 연분

손톱 밑 가시가 되어 아파하며 웁니다

 

머나먼 집 돌아보니 꿈인 양 묻혀지고

이제는 가야 할 때 찬 바람 길을 나서면

내 마음 더욱 외로워 등불 밝혀봅니다

김은희11월을 보내며전문

 

11월은 마무리를 위한 준비의 달이다. 그래서 쓸쓸하고, 아쉬움이 남아 더욱 외로워지는 달이다.

장의 마지막 시어에 니다.’로 반복되어 시적 리듬감을 주고 있다.

11월의 정서를 이별, 인연 외로움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나타내었다.

감정이입과 이미지화가 잘 되었고, 시조로서 성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율격 면에서 둘째 수 맺을 수 /없는 말/ 한마디/ 몰래 지니고맺을 수 없는/ 말 한마디/ 몰래 지니고가 율격으로 어울리지 않을까?

 

 

동구 밖 느티나무 둥지에

까치가 까악까악 울면

행여나 반가운 손님 오시려나

 

앞산에 뻐꾹새 울고

저녁노을 곱게 물들면

초가지붕 굴뚝 위에 밥 짓는 연기

어머니 손맛 담아 피어오른다

-

-중략

형제 잠자던 베갯머리

엄동설한 문풍지 윙윙대며 울던 밤

솜이불 덮어주던 따뜻한 손길

계절 따라 드다들던 철새 떼

그리운 추억 밭에 가슴이 시려온다

松岩 김일진뻐꾹새 울던 고향일부분

 

고향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상상과 추억을 드러낸 구수한 숭늉 같은 작품이다.

한편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어머니 손맛 담아 피어오른다.’ 등은 낯설기 기법으로 시의 맛을 더해 주고 있다.

마지막 연 솜이불 덮어주던 따뜻한 손길/계절 따라 드나들던 철새 떼/

그리운 추억 밭에 가슴이 시려온다.에서 부모님의 은혜가 전율처럼 느껴진다. 감각적인 묘사와 은유적인 묘사로 시를 극대화 시켜놓았다.

 

 

자정을 넘긴 파리한 시간

계절의 창틀에 끼어

파닥거리는 도시의 불빛이

오늘따라 3인칭 작가관찰자 시점처럼

싸늘하기만 하다

소공동 나이트클럽 앞 어디쯤에

똬리를 틀고 경계의 눈빛을

늦추지 않고 있을

이십대의 내 꿈을 콜하며

취기로 염장된 이십대 된장녀의

빨간 스포츠카에 시동을 거는데

학자금 대출 이자가 계기판에

벚꽃 잎처럼 무더기로 피어 있다

김혜련대리기사전문

 

어슬한 하늘 움켜진 틈 사이

구로역 횡단보도 앞은 이른 아침이 넘어지고

겨울이 산란한 바람은 날을 세우다

누런 작업복 목덜미 기 파고들어

아프다

들춰내는 실직이

 

중략

 

막아선 신용불량 최고장보다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옛 애인의 휴대폰 문자

젊었던 시간의 소매를 내리면

지친 하루 식어가는 노을 보다 더 붉은 형용사로 쏟아지는 기억

젊은 그리운 흔적이라면

접힌 지폐의 파산한 시간이 위태롭다

기울어지는 어깨에 허기 한 채 얹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중략

아직도 엎드려 잠들은 새벽길

흔들어 깨워서라도 가야 할 실직의 자리

바람조차 뒤설레 치는 바늘귀

쓰나미로 몰려오는 취업준비생들의 날 선 비명에 깨어난다

아득한 꿈의 깊이만큼

신기루가 피어나는 또 하루

 

구로역 횡단보도 앞은 부재중인 봄이 서성인다.

박종안도시의 신기루전문

번호는 필자가 부기했다.

이 두 작품은 스토리가 있는 작품이다. 현실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나타낸 작품이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시인이 괴로워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라고 했다.’ 시인은 사회의 거울이다. 시대를 반영하는 시인의 작품은 힘이 있다. 다만 시적 장치를 통하여 미적으로 나타내야 한다.

의 작품은 대리기사를 하면서 느낀 삶의 애환을 나타내고 있다. ‘ 파닥거리는 도시의 불빛

학자금 대출 이자가 계기판에/벚꽃 잎처럼 무더기로 피어 있다.’ 도시의 불안함과 대리기사의 어려운 삶을 제시하고 있다.

 

의 작품은 실직자의 아픔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대학을 나와도 취업의 문턱은 바늘구멍 보다 더 좁다. 구로동 인력시장의 모습, 그리고 취업준비생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시대의 아픔을 나타내어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는 작품이다.

구로역 횡단보도 앞은 이른 아침이 넘어지고’ ‘접힌 지폐의 파산한 시간이 위태롭다.’

기울어지는 어깨에 허기 한 채 얹고서등은 불안한 사회 현실을 나타내고 있을 뿐 아니라

삶의 아픔을 나타내고 있다.

위 두 편의 시는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사발 속 물에 담겨진

아내의 틀니를 보고 섬뜩했다

이빨이 박혀 있는 붉은 살 토막이 불빛을 반사했다

 

틀니가 빠져나간 잠든 아내의 모습에서

하관이 홤몰된 낯선 얼굴을 바라본다

 

오뉴월 보리개떡으로 허기를 채운 까닭도 없으련만

칠팔월 호박죽으로 끼니를 때운 까닭도 없으련만

 

굵은 소금에 며칠씩 절여진 오이소박같이

주름이 입안으로 급하게 들어갔다.

 

새들이 부리로 그러하듯이, 아내도 나 모르는 사이

치아로 먹이를 물어다가 아이들을 키웠는가

 

세모시 삼는 것이 그러하듯이, 아내도 나 모르는 사이

치아로 질긴 삶을 가늘게 쪼개며 잇고 짜 왔는가

 

함몰된 얼굴 모습을 남편에게조차 숨기고 싶었던

아내의 속내가 형광등 불빛에 노란 속살로 내비친다.

 

잠자는 아내의 숨소리가 고요하다

 

다음은 내 차례다.

五岩 이희영아내의 틀니전문

 

 

체험과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으로 아내의 틀니를 보고 감각적으로 건져 올린 시다.

일상생활에 있었던 체험도 작가의 요리에 의해 맛있게 작품화 할 수 있다.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은 독자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

화장실 사발 속 물에 담겨진 아내의 틀니, 함몰된 아내의 얼굴, 등의 묘사는 시를 극대화시켜놓았다. ‘치아로 먹이를 물어다가 아이들을 키웠는가에서 삶으로 확장시켜놓았다.

아내도 나 모르는 사이/치아로 질긴 삶을 가늘게 쪼개며 잇고 짜 왔는가여기에서도 시적미감을 극대화 시켰다.

이런 작품이 독자들에게 가슴을 짠하게 만든다. 가슴 깊은 내면의 세계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갈치 같은 작품이다.

 

째깍째깍 아버지가 돌고 계신다

하루를 기워가는 바늘에 올라타시고

뻐꾹뻐꾹 그 오랜 목소리가 고운 무늬로 찍힌다.

 

어는 날인가 가출한 시골뻐꾸기

시간이란 놈의 꼬임에 빠져 그만

숙식 제공이란 말에 아버지를 따라왔다

그날로 벽면에 예쁜 집을 짓고 사시사철

봄날 같은 궁전에서 신나게 숫자를 돌리다

발목에 매달린 하루는 점점 무거워지고

날갯짓은 함 뼘의 허공에서 서글픈데

기웃대던 어제는 아버지 단내로 불어오고

한나절 햇살이 그늘진 자리 숲이 들어서면

울컥대는 향수병에 온종일 울고 울었다는 데

 

그렇게 울다가 귀향했는지도 가물가물한 시점에서

그 놈의 잔망스런 과거에 간당간당 그네를 타시는 아버지

째깍째깍 벽시계로 뒹굴다 벽이 되어버린 내 아버지

조홍제 벽시계전문

 

이 작품은 벽시계를 아버지로 환치시킨 작품이다. 우리 모두는 시계처럼 째깍째깍 흘러가고 있다. 젊음에서 늙어가는 삶의 모습이 나타나있다. 시골에서 도시로 거처를 옮긴 아버지와 뻐꾸기시계의 환치가 이 작품의 묘미다. 아버지는 뻐꾸기시계가 가르치는 시간에 따라 숙명처럼 움직이게 된다.

이 작품에서 시적 미감을 높이고 있다. ‘그 놈의 잔망스런 과거에 간당간당 그네를 타시는 아버지/째깍째깍 벽시계로 뒹굴다 벽이 되어버린 내 아버지여기에서 우리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3. 마무리

체험과 상상으로 이루어 진 작품들이 생동감이 있다. 아직도 사물의 모습을 표피적으로 그려내는 작품을 볼 수 있다.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놓았다고 하자 그러나 사진만큼 그리기는 어렵다. 작가의 독특한 삶의 모습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사진 찍기와 다를 바 없다. 아직도 많은 시인들은 사물 속에 탈을 쓰고 작가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시는 함축적이다.’ 는 말을 많이 한다. 그것은 작가의 개성적인 삶이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작품의 소재와 제재는 시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어떻게 요리하느냐 따라서 시적인 맛이 달라진다. 다 같은 시각으로 보이지만 체험과 상상에 따라 달리 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권 제295호 월간문학세계에서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같은 작품도 독자의 체험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체험과 상상에 의해서 이루어진 작품은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시를 쓴다면 감동이나 공감, 그리고 울림이나 충격을 주든지, 교훈이나 깨달음을 주든 지 한 가지는 주어야 하지 않을까?

꽃 피는 3월을 기다린다. 새로운 작가들의 좋은 작품을 나오리라 믿기 때문이다.

월간 문학세계가족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꽃으로 환하게 피어나길 기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