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구조 분석을 통한 시적 미감(美感) 찾기
김전 (시인, 문학평론가)
kumijb@hanmail.net 1.서언
시는 다양한 방법으로 묘사하고, 생각하고, 상상과 체험을 그리고 느낌으로 정서를 나타낸다.
시를 시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함축적이어야 하고 시적변용을 통하여 표현해야한다.
다시 말하자면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내면에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내포적 의미, 즉 메타포(metaphor)기능을 통해 나타내는 것을 함축적 기능이라 한다.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주관에 의해 모양이나 형태를 의식적으로 변개하여 나타내는 기능을 시적변용(deformation)이라 한다.
함축적 기능과 시적 변용을 통하여 시다운 시를 만나게 되면 즐겁기 그지없다.
이런 관점에서 시를 구조적으로 분석해 보고 시의 참모습을 찾아보자.
시는 전체적으로 묘사 + 생각으로 이루어진 작품, 행위 + 생각의 구조로 이루어진 작품, 묘사 구조로만 이루어진 작품, 생각 구조로만 이루어진 작품, 등 여러 구조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작품을 살펴보고 창작할 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2. 시의 구조 분석과 시의 표현 방법
가. 묘사 + 생각으로 이루어진 작품
햇살을 베고 누워 덕장의 명태처럼
말라가고 있다
찬 논바닥의 그루터기를 감싸 안은 볏짚이
질척이는 빗속에 젖어들고 있다
시간의 잔주름 위를 쓸고 가는 바람 소리에
몸을 으스스 떨고 있다
마른 눈물자국이 흐릿한 기억을 베고 누운 곳마다
시간의 더께가 비듬처럼 쌓여간다
툭툭 불거진 힘줄에 주름진 손의 헐거운 생을
부여잡은 농부의 땀방울로 찌든 체취가 앓아누워 있다
무청처럼 비비 말라버린 볏짚 위에 무서리가 내리면
후줄근한 외로움이 질퍽하게 스며든다
찬비에 젖은 눈망울처럼 어룽거리는 낟알들을
훌훌 떠나보낸 슬픔이 질척이는 비처럼
빛바랜 가슴을 흥건히 적신다
양경한 ⌜논바닥에 버려진 볏짚⌟ 전문
1연 2연 3연 은 논바닥에 버려진 볏짚의 모습, 4연은 생각과 느낌을 나타내었다.
감각적 이미지로 시의 미감을 극대화 시켜놓았다.
‘부여잡은 농부의 땀방울로 찌든 체취가 앓아누워 있다’ 시각 +후각
‘시간의 잔주름 위를 쓸고 가는 바람 소리에’ 시각 + 청각
이 작품은 감각적 묘사와 비유법이 어우러져 시적미감을 느끼게 한다.
‘햇살을 베고 누워 덕장의 명태처럼’ ‘시간의 더께가 비듬처럼 쌓여간다’
논바닥에 버려진 볏짚을 보고 관념적인 시어들을 구체적 이미지로 환치시켜 놓았을 뿐 아니라
시적 변용을 통하여 시의 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위의 시는 시적으로 승화시켜놓은 작품으로 가슴 촉촉이 적시는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나뭇가지
호롱불 거꾸로 매달았다
주렁주렁 매달았다
불을 밝히면
우리 집 거실에 모셔다
불을 밝히면
아름다운 독도 초롱 꽃등
소금냄새
짠바람이 그립고
이웃 나라 눈 먼 탐욕에
안타까워
독도는
오늘
비를 맞고
눈물만 뚝뚝 흘린다
장만호 ⌜독도 초롱꽃⌟ 전문
4연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1연은 호롱불 모습 , 2연 3연 4연은 독도에 대한 생각과 느낌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런 구조를 선경후정(先景後情)이라고 한다.
‘소금 냄새 짠바람’에서 공감각적 이미지를 만들었다. 독도는 오늘도 일본 놈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래서 눈물만 뚝뚝 흘린다고 감정이입을 시켜놓았다. 비유와 함축적 기능을 통하여 독도를 시적으로 승화 시켜놓은 작품이다. 또 초롱꽃을 통하여 독도사랑을 나타내고 있는 작품으로 교훈적이다.
아직 이른 새벽
밖이 시끄럽다
아파트 창문 사이로 아래를 내려다본다
묵직한 장비에 검은 장정들의 움직임
커다랗고 찌그러진 리무진 차에
고통 사랑 추억 모두가 엉클어진 채
쓸모없는 잡것이 되어
와자작 끼익 덥석 물리고 내동댕이
겹겹이 늘리고 쌓여 숨이 막힌다
팔자에 따라 나름대로 뒹굴다가
끼리끼리 낯설게 만났지만
살아온 이야기도 채 못 나누고
한밤을 노숙하고 비명에 떠난다
멍하니 바라본다
그 자리는 다시 깔끔해지고
또 같은 일이 반복 되겠지
껍데기는 떠나가고
영혼은 제자리를 맴도는데
버리고 분리되어 실려 가는 나의 날은•••,
박춘추 ⌜분리 수거하는 날⌟
이 작품은 4연으로 된 작품이다. 1연~3연 쓰레기 싣는 모습, 4연 생각과 느낌으로 이루어져 있다. 분리수거하는 모습을 디테일하게 묘사했을 뿐 아니라 시적 변용을 통하여 시다운 시의 맛을 내고 있다. ‘고통 사랑 추억 모두가 엉클어진 채/쓸모없는 잡것이 되어’ 쓰레기를 함축적으로 나타내었다. ‘껍데기는 떠나가고/영혼은 제자리를 맴도는데/버리고 분리되어 실려 가는 나의 날은•••,’
마지막 연은 화자 자신으로 투영되어 자신도 쓰레기로 실려 가는 날을 생각하며 자아성찰로 마무리 지었다. 이 마지막 연에서 시다운 시의 모습을 깨닫게 해준다.
나. 행위 + 생각의 구조로 이루어진 작품
누웠다 앉았다가
먼 산을 바라보다
반야경 서너 줄을
읽다가 접었다가
모처럼
푸른 일요일이
천 근 보다 무거워
김옥중 ⌜일요일⌟ 전문
이 작품은 3장 6구 12음보로 이루어진 정형시다. 시조의 종류로는 단형시조다. 초장 중장은 행위이고 종장은 느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요일을 짧은 단형시조에 잘 담았다. 종장 ‘일요일 천 근 보다 무거워’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빨간 일요일이 아니고 푸른 일요일이라고 했다.
휴식하는 일요일이 아니고 일하는 일요일을 나타내기 위한 시적 장치라고 본다.
종장에서 시적 변용을 보게 된다. 종장의 반전을 통하여 시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다.
다. 묘사 구조로만 이루어진 작품
그 소경은
여느 거지같이
이 시대를 반추하는
걸쭉한 유행가를 부르지도 않았다
그는
다른 걸인처럼
많은 사람의 동정을 자아내는
성스런 찬송가를 소리 내지도 않았다
불구의 한쪽 다리를 힘겹게 절뚝이며
다만 지팡이에 의지한 채
마냥 전철 안을 걷고 있었다
시집을 보던 내 앞도
그는 소리 없이 지나치고 있었다
난 전생에 꾸었던 부채를 갚듯
핸드백에 손을 넣어
바쁘게 한 장 건네었다.
그 남잔
얼마간 말없이
나에게 급하게 목례를 한 후
저-만 큼 내게서 멀어져 갔다
얼마 동안 나에게 뒷모습을 보이며•••
홍경임 ⌜전철- 안에서⌟ 전문
이 작품은 시각적으로 나타낸 작품이다. 전철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말없는 걸인을 보고 많은 사람이 무심코 앉아 있는 데 화자는 지폐 한 장을 아낌없이 주었는데, 걸인은 말없이 목례를 하고 갔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절뚝이며 살아가는 장애인들을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린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모습만 스케치하듯 그리는 작품은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시적인 변용이나, 언어의 비틀기나, 뒤집어 보기, 낯설기 기법으로 시를 표현했으면 어떨까?
으와 천지개벽이야!
으악! 하늘 무너진다
덮친다 물벼랑이
물벼락 떨어진다
물보라 구름 속에
나도 따라 무너진다
터지는 소리 소리
넘치는 소리 소리
소리 밖의 소리 소리
소리 속의 소리 소리
오 저기, 낮달이 걸친
한 파람 저 무지개,
신을 섬기는 이여
여기 와 서보시라
신을 외면하는 이여
여기 와 서 보시라
느꺼운 목숨 하나이
다시 돌아 뵈리니,
허일⌜나이아가라⌟전문
나이야 가라 폭포는 광대한 모습이다. 풍경을 보고 그린 작품이다. 시각과 청각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두 수의 연시조이다. 무지개 피어오르는 이 폭포를 보면 한마디로 감동이다.
물보라가 쏟아지는 모습은 하늘이 무너지는 모습이다. 장관을 이루는 폭포는 글로서 나타낼 수 없는 조물주가 만든 작품이다.
화자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나이야가라 폭포의 전경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이 작품에서 소리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폭포의 전경을 점층적으로 나타내기 위하 묘사다. 이 폭포에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라. 생각 구조로만 이루어진 작품
나이 먹은 날들은
자주 외로운 날들이다
때론
아주 많이
울고 싶은 날들이다
바닷새가 입 벌리고
바다를 다 삼켜도
모자랄 일이고
샛강에 저녁 물새가
하루를 슬피 울어도 못다 슬플 일이다
세월 따라가는 바람에
내가 울 일이고
오늘은
저녁 강물도 울며 흐를 일이다
신영철⌜저녁 강물도 울며 흐를 일이다⌟전문
5연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나이 들면 누구나 외로워진다. 우리나라의 노인 자살률이 세계 1위며 원인은 고독사라고 한다.
이작품은 전 연이 생각(느낌)으로 이루어져 있다. 1연 외로운 날, 2연 울고 싶은 날, 3연 바닷새보다 더 울고 싶은 날, 4연 물새보다 슬픈 날, 5연 나도 울고 강물도 우는 날, ‘바닷새가 입 벌리고/바다를 다 삼켜도/모자랄 일이고 샛강에 저녁 물새가 /하루를 슬피 울어도 못다 슬플 일이다.’에서 시적변용으로 이 작품을 극대화 시켜놓았다.
시는 정서의 표출이다. 시적자아의 심정을 솔직담백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리듬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외롭고 울고 싶은 날을 점층법으로 나타내어 나이든 사람의 심정을 대번하고 있는 작품으로 감동적이다.
나의 하얀 속마음을 비우고
당신을 기다리는 이유는
내 마음이 채워지면
당신의 입술이 나의 입술에 닿아
맑게 고인 향기를 모두 가져가기
때문이지요
어느 때는 차디찬 냉정으로
어느 때는 따스한 열정으로
나를 유혹하는 당신은
나를 만날 때마다
나의 모든 것을 가져가도
나는 아무런 반항도 없이
모든 것을 다 주었기에
다시 찾아올 당신의 향기를
해맑은 마음으로 기다릴 뿐
우리들의 만남은
해맑은 하모니로 다가서는
아름다운 동반자
이원용 ⌜유리잔의 비밀⌟ 전문
이 작품은 유리잔을 의인법으로 나타내어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고 있다.
유리잔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것이다. 다분히 유혹적인 향기로 다가오고 있다.
이 작품은 감각적 이미지와 촉각과 후각으로 나타내어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하여 달콤한 사랑을 만나게 된다.
배운 것 많다는 게
자랑인 쥴 알았는데
새로 배울 것
너무나 많은 세상
어쩌다 나이 들고 나니
모르는 게 많구나
정순량 ⌜나이 들고 나니⌟ 전문
이 작품은 시조이다. 시조의 본령은 단형시조이다. 단형시조란 초장, 중장, 종장, 이루어진 작품을 말한다. 3장 안에 모든 것을 넣어야 한다.
이 작품은 작가의 생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시인은 자기완성을 이루기 위해 시를 창작한다. 시는 곧 시인의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자기 성찰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나이 들고 보니 모르는 게 더 많다는 자기반성이다.
여기에서 겸손의 미덕을 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 말하듯이 시를 펼치고 있다. 독자들에게 교훈을 주는 작품이라 여겨진다.
3.결언
1월호 월간문학세계에서 많은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지면 관계상 다 언급하지 못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김윤식(전 서울대 교수)은 ‘비평이란 남을 칭찬하는 독특한 기술이이다.’라고 전재하고 있다. ‘비평이란 남의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어 헤집는 것이 아니고 가치를 찾아내어 칭찬해주는 것이다. 작가 자신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부분을 평론가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줌으로써 작품의 미적 가치를 높여 준다. 이를 통해 작가는 새로운 창작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 말에 공감을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시는 정서의 표출이다. 시적으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함축, 시적변용을 통하여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시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시적 미감을 찾아보고 나의 견해를 피력해 보았다. 다음으로 시의 구조 분석을 해 보았다. 다른 방법도 많았지만 몇 가지만 제시했다. 시를 창작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적절한 지는 작가 개인의 몫이다.
시인의 깊은 사유 속에서 우러나오는 작품을 기대해 본다.
작가들은 겨울에 좋은 시가 나온다고 한다. 세찬 바람을 뚫고 나온 청보리처럼 싱싱한 작품을 기다리면서 필을 놓는다.
'시 해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다정 서평 (0) | 2019.03.16 |
---|---|
3월 월평 '체험과 상상, 그리고 느낌을 주는 시' (0) | 2019.02.08 |
사랑과 언어를 통하여 존재의 집을 짓다/201베이비박스 서평 (0) | 2018.11.28 |
문학애 2017 겨울호 계간평 (0) | 2018.03.13 |
순백(純白)의 깃발로 펄럭이는 사랑의 메시지-김서정 (0) | 2017.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