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정 시 “우듬지 빈 둥우리를 지키는 바람” 해설
순백(純白)의 깃발로 펄럭이는 사랑의 메시지
김전(시인, 문학평론가)
Ⅰ. 프롤로그
좋은 시란 어떤 시인가? 이러한 명제 앞에 명쾌하게 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문학은 개성적이고 창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나름대로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감동을 주고 공감을 주는 시라는 데 아무도 이의를 달 수 없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진솔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한다.
둘째, 소통을 말하고 싶다. 오늘날 시들은 깊은 사유도 없이 언어를 이리 저리 비틀어 놓아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 없다. 독자가 없는 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설적이고 1차적인 언어로 토해내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셋째, 비유와 상징을 말하고 싶다. 낯설기 기법을 통하여 미적쾌감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넷째, 시 정신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는 상처 받은 인간을 구원하는 영혼의 등불이다. 다시 말하면 시는 우리의 몸이요 생명이요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시를 생각하고 사랑한다면 분명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임동윤, “시와 소금” 2016,봄호)
아름다운 서정시는 우리들에게 더할 나위도 없이 영혼의 양식이라고 볼 수 있다.
시는 시인의 성정(性情)에서 나온다.
김서정의 첫시집 “우듬지 빈 둥우리를 지키는 바람”은 한마디로 눈처럼 맑고 깨끗하다. 자연을 배경으로 순수한 삶의 이야기를 제시하고 있다.
제1부 “비오는 날의 스케치”, 제2부 “머물 수 없음에”, 제3부 “가을 산책”, 제4부 “추억의 그 자리에서”, 제5부 “살아 있음에”로 구성되어 있다.
김서정 시인은 시를 사모하고 시를 생활화하고 있다. 시가 그의 삶이고 삶이 바로 시이다.
문학과 함께 하는 삶이기 때문에 시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순백한 사랑과 사유의 얼굴들
먼저 봄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희망과 함게 산뜻함을 주고 있다. 봄의 향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옅은 미소에
도도록 도도록 열린 열매가
누군가의 시린 가슴에
작은 씨앗을 뿌리는 봄날에
이월 언덕에 머무는
꽃샘바람을 따뜻이 안고
환한 웃음으로 평지로 내려오는 봄날에
별빛 하나 없는 밤
어디선가 들려오는 달큼한 노래가
수많은 별을 만드는 봄날에
우듬지 빈 둥우리를 지키는 바람이
다시 돌아온 이름 모르는
작은 새를 만나는 봄날에
왠지 무너질 것 같았던
한 그루 나무가
햇살 벗과 수많은 대화를 하고
연둣빛 새싹이 윙크하는 봄날에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보았어요
<봄날에 보았어요> 전문
생명을 잉태하는 봄날을 그리워하고 있다. 시련과 고통 속에서 열매를 얻을 수 있다. 열매를 얻기 위하여 환희의 노래를 하고 있다. 이 작품 속에는 진한 사랑이 들어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다.
시적화자의 긍정적인 삶과 사랑이 이 시를 돋보이게 한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중심소재는 ‘열매’, ‘꽃샘바람’, ‘환한 웃음’, ‘밤’, ‘달큼한 노래’, ‘햇살’ 부정적인 요소와 긍정적인 요소가 반복을 이루면서 사랑을 승화시키고 있다. 삼라만상이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봄날을 보고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김서정 시인의 시상 전개가 예사롭지 않다.
소소리 바람이 삼월 봄을 안고
추워서 파르르 떠는 온몸에
사월이 흐놀고 흐논다
가까이 가면 봄이 아려서
윙윙윙 울고 있다
봄도
가장 여리지만
가장 강한 꽃잎으로
갓 태어난 새순의 들녘으로
고독 벗은 나목의 나뭇가지로
바람을 안고 설핏한 계절에
상생의 그림을 펼친다
장작은 작은 아궁이에서
산골 마을 군불로 살 때
타닥타닥
가장 행복한 소리를 낸다
아궁이는 그 소리를
온돌방에 전달하며
뜨뜻한 묵언의 정을 남긴다
누군가에게 식지 않는 심장은
생명을 살리는 뿌리다
<아름다운 삶> 전문
이 작품에서 독특한 시어를 발견할 수 있다. ‘소소리’, ‘흐놀고’, ‘설핏한’등이다.
‘소소리’는 높이 우뚝 솟은 모양, ‘흐늘고’는 흔들다 옛말, ‘설핏한’은 사이가 촘촘하지 않고 듬성듬성하다의 뜻이다. 우리말을 다양하게 부리면서 시의 확장성을 꾀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 작품도 자연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삶을 묘사하고 있다.
시간적 배경은 3월에서 4월로 지나가고 있다. 나목의 강인함과 장작의 따스함 사랑이 솟아나고 있다. 이 시가 바로 생명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있다.
세상을 사랑으로 바라보는 시적자아의 태도가 믿음직스럽다.
‘파르르’, ‘윙윙윙’, ‘타닥타닥’ 등 의성어와 의태어가 시의 멋과 맛을 더하고 있다.
날 부르는
누구네 집으로 성큼 다가간다
눈빛과 눈빛이 만나는 순간
잠자던 생각이 벌떡 일어나
배시시 웃는다
그리고
연필을 잡고
초록 인물화를 그린다
초록 실핏줄이 즐겁다
나를 그리는 행복한 작은 손에
내 모든 초록 피가 돌고 있다
가없는
초록 정으로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오월이 참 좋아라
누구네 집이 또 손짓하네
<앞산의 고백> 전문
앞산을 의인법으로 처리하여 시의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
5월의 산들이 연필을 잡고 초록으로 그리고 있다. 싱그러움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 속에도 사랑이 들어 있다
‘눈빛과 눈빛이 만나는 순간’ / ‘잠자던 생각이 벌떡 일어나’ / ‘배시시 웃는다’ 산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잘 그려 놓았다. 시의 기교를 알고 시의 쾌감을 맛볼 수 있도록 여백도 줄 수 있는 작가의 역량이 들어 있다.
시간은 강물처럼 흐른다. 봄을 생동감과 사랑으로 깔끔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
여름으로 넘어가 보자.
수변을 흔들고 있다
작고 예쁜 얼굴과 초록 손짓으로
꼿꼿한 갈대까지 사정없이 흔드는
가녀린 하얀 소녀
수변에 노래가 있다
유월의 흔들림을
초록의 속삭임을
바람 지휘에 맞춰서
상큼한 중저음을 그리는 소녀
예쁘게 마음 훔치는 소녀
밤을 고요히 흡수한다
사랑이 잠이 든다
그러나
사랑은 일어난다
잠자는 수변을 깨우는
싱그러운 사랑
이파리 시든 들꽃 들풀에게
미소 짓는
하얀빛 사랑
<개망초> 전문
개망초를 은유적으로 나타낸 시어를 찾아보자. ‘가녀린 하얀 소녀’, ‘상큼한 중저음을 그리는 소녀’, ‘하얀빛 사랑’으로 나타내고 있다. 의인법으로 처리하였다. 티없이 맑고 밝은 모습이 떠오른다. 시는 사물을 보고 상상력과 합성되어 새로운 시어로 탄생한다.
시는 비유와 상징으로 이루어진다고 본다. 메타포가 없는 시는 시적 쾌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독자에게 여백을 주고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작품이 독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시라고 생각된다.
태양 물감에 붓을 적셔
하늘을 그리고
남은 물감은
바다에 떨어트려
내 마음 흠뻑 적신다
지구 마을에 아낌없는
사랑이 쏟아져 활활 타고 있다
아! 찬란한 그림
어느 무명 화가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캔버스에 스케치하는 손이
사뭇 뜨겁다
삶은
머무는 자리에서
오롯이 피는 꽃도
아름답지만
여객으로 흐르는 잡초도
싫지마는 아니어서 좋아라
재 너머 바람이
나를 살살 부르고 있다
내일은 어떤 그림을 그릴까?
태양은 어떤 물감을 준비하고 있을까?
<저녁노을> 전문
이 작품도 매우 재미있는 발상이다. 태양이 하늘을 물감에 붓을 적셔 빨갛게 그리고 있다. 바다에도 물감으로 온통 불타게 만들고 있다. 물감은 사랑으로 대치시켜 놓았다. 불꽃 모양으로 활활 타고 있는 사랑이다.
삶이란 꽃과 잡초까지 사랑을 얹어주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태양은 어떤 물감으로 내일을 준비하고 있을까? 의문문으로 제시하여 시의 극대감을 높여주고 있다.
이런 작품들은 독자와의 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작품에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독자에게 감동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수준작이다.
별은 낮이 오면
온쉼표를 그리며
태양의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홀연히 나타나
고독한 검정을 시나브로 녹이고
상한 심장을 일으키는
고혹한 눈망울이 된다
아!
얼마나 멋진 삶인가
별아
오늘은
나도 사라질 것 같았던
첼로 선율을 살리며
너의 눈빛을 오선에 넣는다
허망한 세월 나무에
늘어져서 부딪치는 열매
과감하게 확 날리고
정원에 소망 나무
한 그루 심어서
자작나무와 함께
유유히 걸어가자
<8월의 소망> 전문
3연 21행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1연에서 별은 상한 심장을 일으키는 고혹한 눈망울이 된다.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고 있다. 창조적 상징으로 노래하고 있다.
2연에서 별에 대한 그리움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3연에서 8월에 대한 소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각 연마다 7행씩으로 배열하여 음악적 요소도 잘 살리고 있다.
관념적인 8월의 소망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감사와 함께 긍정적인 삶으로 승화 시키고 있다.
시인은 따스한 마음에서 아름다운 시를 창작할 수 있다.
감각적 이미지가 이 작품들을 별처럼 빛나게 만들고 있다.
싱그러운 초록의 여름을 뒤로 하고 풍요로운 가을로 들어가 보자.
구월 들판에 가 보아라
자유롭게 살아가는 저들의 모습을 보아라
얼마나 아름다운 춤사위인가
바람 손을 잡고 저들만의 고고한 노래가
티 없이 가을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구월 산에 가 보아라
여름을 충분히 먹고 자란 나무들이
푸른 눈빛을 떨구고 발 옆에 있는 풀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좋아서
바람도 왈츠로 가을을 휘돌고
어느새 새들도 경쾌한 노래로
돌림 노래를 하고 있다
협곡도 악상을 한껏 살리며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하얀 웃음을 머금고
구월 하늘을 바라 보아라
곰살궂게 흐르는 저 모양을 가만히 보아라
청잣빛 햇살이 산야에 내려와
평화를 그려주고 있다
한 옥타브 낮은 음표로
구월을 보고 또 보아라
<구월> 전문
이 작품은 리듬이 생동감 있게 한다. ‘보아라’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는 리듬의 문학이다. 시와 산문의 차이점은 리듬(운율)이라고 본다. 음악적 요소가 들어 있는 시는 낭송하기도 안성맞춤이다.
시적 화자의 시점을 살펴보면 구월 들판에서 구월 산으로 다시 구월 하늘로 올라 간다 차츰 차음 위로 상승하는 위치로 이동한다. 점층적으로 나타내어 구월을 묘사하고 있다.
단단한 구조에 의한 작품이다
풍요로운 들판의 춤사위와 새들의 경쾌한 노래소리 청잣빛 햇살과 함께 조화로운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구체화 시켜 놓고 있다.
작가의 깊은 사유 속에서 농익은 작품들을 표출하고 있다.
흐르는 자유가 잠잠히
언어를 돌돌 말아서
가방에 넣어 준다
큰 바위를 에돌아가는
지혜의 물이
느림의 아름다움을
알게 하고
들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물소리가
산꼭대기에 걸어둔 마음
산기슭 나뭇가지로
이동시키고
먹거리를 찾아온 새들에게
가없이 터를 내 주는 하천이
둥우리 사랑 풀고 풀어라 하고
산책길 사람들과 함께 흐르는 물이
빛이 바래지지 않는 태초의 사랑
흐르고 흐르라 하네
<하천의 소리> 전문
여기에서 하천은 1차적인 언어가 아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터전이다.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철학이 담겨져 있다.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가 떠오른다. 물처럼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선이 아닐까?
느림의 아름다움, 경청하는 자세, 양보 사랑 등이 담겨져 있다.
아름다운 세상으로 비쳐지는 작가의 눈은 착한 마음에서 우러나오고 있다.
하찮은 하천을 보고 세상으로 확장하여 살아가는 지혜를 주는 작품이다.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작품이 아니고 작가의 사상과 철학이 들어 있는 작품은 독자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줄 수 있다.
낙엽에 낭만을 뿌리며
긴 오솔길에 사색을 놓았다
소나무가 내 혼의 뿌리를
세게 흔들고
솔잎이 허공을 돌며
새 만남을 반긴다
더할 수 없이 순결한
이파리들 사랑이
화르르 화르르 날린다
구멍 난 가을 심장에
낙엽은 떨어진 채로
사랑으로 올라와
사랑을 깊이 덮는다
이 사랑이 아리도록 맑아서
이 사랑이 슬프도록 좋아서
동공의 샘이 철철 흐른다
아! 이 사랑
<가을 산책>전문
가을을 대표하는 제재는 낙엽이다. 나무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수분의 소모를 적게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영위하기 어렵다. 스스로 나뭇잎을 떨어뜨린다. 나무들은 생존의 법칙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들은 사색과 낭만을 껴안고 온 산하를 덮는다. 낙엽은 이불이 된다.
여기서 사랑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낙엽은 사랑으로 환치(換置)된다. 서정시에서 사랑과 그리움들이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다.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낭만과 사색의 가을을 뒤로 하고 추억의 계절을 만들어 내는 겨울로 가보자.
소나무 향기가 겨울에 와서
고사리 손들을 호 호 불어 주었다
앞산의 노래가 교실 가득히
날아다니며
불현듯 그 시절이 눈물을
놓고 간다
경아 희야 철이 훈이도
솔방울 눈물에 속살거리고
일제 강점기와 6.25가 남긴
부모님 자국 위에
그 누구도 볼멘소리를 얹지 못했던
희뿌연 그림들이
운무처럼 내려오면
5학년 1반 솔방울 난로도
뒤따라 와서 고향을 깔아 준다
그때는 그랬다
솔방울에 우리 꿈이 타올랐고
골짜기 사랑이 촉촉이 가슴을 적셨다
가난했지만
<추억의 그 자리에서>
이 작품에서 낯설기 기법을 찾아보았다. ‘나무 향기가 겨울에 와서 고사리 손들을 호호 불어 주었다’, ‘앞산의 노래가 교실 가득히 날아다니며’, ‘불현듯 그 시절이 눈물을 놓고 간다’, ‘경아 희야 철이 훈이도 / 솔방울 눈물에 속살거리고’, ‘솔방울 난로도 뒤따라 와서 고향을 깔아 준다’, ‘솔방울에 우리 꿈이 타올랐고’ 등이다. 시를 직설적으로 그리지 않고 낯설기 기법으로 나타내면 시적 묘미가 있다. 이미지를 극대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의 추위 속에서 희망의 봄을 기다리며 산다. 기다림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가난한 솔방울 난로를 통하여 추억의 훈훈함을 제시하고 있다. 물질적으로 가난했지만 풍요로운 정(情)만은 넘쳐났다.
추억은 과거이다. 과거의 시련들이 오늘에 오면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이 작품은 낯설기 기법으로 통하여 시적 미감을 잘 살려내고 있다
바람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말을 조곤조곤 나누듯이
혀끝에 오종종한 언어
문 열린 지인 집으로 들어가
똑 똑 따서 커피에 녹이며
손을 잡고 싶을 때가 있다
사각의 아파트 안에 있는
반듯한 사유들이
때로는 구멍 난 양말처럼
결 곱지 않는 것으로 변하여
귓전에 소식을 놓고 가는
편안한 벗이 있어서 참 좋다
삭풍 속에서 안녕을
전하거나 묻는 사람이 정겹다
사이가 가깝거나
혹은 멀다 할지라도
<안부> 전문
음산한 겨울의 모습을 정겹게 묘사하고 있다. 의인법으로 처리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매개체로 하여 구체적 이미지로 승화 시킨 점은 매우 이색적이다.
관념의 틀을 깨트리는 든든한 시적 바탕이 돋보인다.
삭풍 속에서 안녕을 전하는 안부야 말로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일까?
안부를 통하여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고 있다.
시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다.
한 잎 두 잎 세 잎
하얀 꽃잎이 너울거리며 쌓인다
그 사이사이에 선연히
눈물꽃이 피어난다
아파서 터지는 소리가
희망을 빼앗아
북풍이 스산하게 울 때
내 고통도 흑흑거리며
숨을 막았던 그날
맑은 눈을 가지고
다정한 친구로 다가와
하늘빛 손수건을 건넸던 널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작은 노트에
네 이름을 차곡차곡 담아서
가슴에 시냇물이 흐르는
아들에게 안겨주고
두 눈을 고요히 감고 싶었지
그런데
네 이름에 나래가 달리면서
나도 같이 훨훨 날았던 그날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찬바람이 어둠을 손질하는
새벽에 찾아와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널 다정하게 품고
오늘도 갤러리에 너를 올린다
너와 손 꼭 잡고 갈 거야
하나밖에 없는 친구니까
<시> 전문
호흡이 긴 작품이다. 너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회자(膾炙) 되는 작품은 15행에서 20행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너무 길면 낭송하기에 부적절하다.
오늘날 독자들에게 외면을 받을 수 있다.
시작(詩作)은 산고(産苦)라고 볼 수 있다. 깊은 사유가 육화 되어 나올 때 좋은 작품으로 탄생된다. 이 작품 속에서 시어를 살펴보면 ‘눈물꽃’, ‘북풍’, ‘고통’, ‘갤러리’, ‘친구’를 제시하여 산고(産苦)와 탄생의 환희를 묘사하고 있다.
시는 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작품이 따라온다. 늘 시를 품고 사는 사람이 작가이다.
생활이 詩이고 詩가 생활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그에겐 자연 모두가 詩이기 때문에 광활한 우주를 향하여 시적 지경(地境)을 넓힐 것이다.
G 병원에 한 그루 나무가 있다
이미 시작된 전주곡에
강한 악상이 달리면서
뇌출혈로
뿌리가 땅 밖으로 드러나
나뭇가지 물오름을 빼앗겼다
그러나 그날 이후
정원 의사의 수고로움으로
나뭇가지에 작은 새순이 돋아났고
잃었던 소리가 새싹에 젖어 있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한 그루 나무에
들숨과 날숨이 교차되면서
이파리가 살랑거린다
그 사이로 살아 있는 신호등이 있다
웃음 신호등이 켜지고
눈물 신호등은 꺼지고
서광이 비치는 시간에
감사 신호등을 켠다
살아 있음에
살아 있음에
<살아 있음에> 전문
우리는 살아 있기 때문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삶의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허덕이고 살아났을 때의 감사함은 어디에다 비길 수 있겠는가? 이 작품에 나오는 나무가 죽음에서 살아난 기쁨이다. 작가 자신이 나무에다 감정이입 시킨 작품이라고 보여진다.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는 큰 축복인가? 교훈적이다
시적화자는 늘 삶 속에서 숨을 쉬면서 우리의 삶을 대변해 주고 있다.
시가 우리들과 함께 동고동락 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작가의 긍정적인 삶의 모습이 시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Ⅲ. 에필로그
좋은 시는 앞에서 지적한 바 있다 ‘독자에게 감동과 공감’, ‘독자와의 소통’, ‘비유와 상징’, ‘작가의 시 정신’을 들었다.
이런 점에서 김서정 시인의 시는 자연과 사랑에 대한 깊은 애착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삶에 대한 긍정과 감사함을 갖고 있다. 따라서 독자에게 감동과 공감을 줄 뿐 아니라 재미까지 덤으로 얹어주고 있다.
각 작품마다 쉽게 읽혀지고 쉽게 이해된다. 적절한 비유와 상징, 낯설기 기법으로 시적 쾌감을 주고 있다
작가의 시 정신은 작가의 치열한 삶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삶 자체가 詩이고 詩가 삶이다.
항상 詩와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 하면서 살아가고 있음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깊은 사유 속에서 건져내는 그의 시는 싱싱한 은빛 갈치처럼 번짝인다.
순백의 깃발로 펄럭이는 사랑의 메시지가 행간마다 숨어 있어 따스함으로 다가온다.
시는 우리의 삶이고 몸이고 영혼이다. 구원의 길을 찾기 위해 나서는 김서정 시인은 항상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정진하고 있다.
작가의 첫 시집 ‘우듬지 빈 둥우리를 지키는 바람’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시집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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