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와 고독의 스펙트럼에 비쳐진 窓
시인 김 전
투박한 모습으로 농촌을 지키는 황소 같은 채명호 시인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시집을 내는 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길레 출판의 과정을 말해 주고, 오랫동안 써 온 시를 이제 한 권으로 묶어서 지금까지의 삶을 결산하는 의미로서도 괜찮겠다고 이야기 해 주었더니, 몇 달이 지나고 나서 원고 초고를 들고 와서 해설을 써 달라기에 거절하였다.
첫 시집이니 만큼 명성 있는 시인이 써 주는 게 시집을 무게 있게 만들어 줄거라고 설명해 주었으나 막무가내였다. 산 속 깊이 고고히 향기를 흩뿌리고 있는 山菊처럼 고고한 채시인의 성품을 내가 아는 지라 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얼떨결에 채명호 시인의 작품을 꼼꼼이 읽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오늘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제 정신을 차리고는 살아갈 수 없는 가치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누구나 부인하지 못할 것이리라.
감동을 주지 못하고 숙성되지 못한 시들이 판을 치는 불행의 이 시대에 시가 외면당하는 것은 어쩌면 當然之事일 것이다. 인간 내면의 깊숙한 곳의 아름다움을 퍼 올리는 役事를 우리 시인들이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채명호 시인의 “겨울 과수원”은 우리의 가슴속을 후련히 적셔주는 활력소가 되리라 믿는다.
채명호 시인의 작품집 “겨울과수원”은 총 5부로 되 1부 웃음사냥 , 2부 유년의 추억 , 3부 겨울과수원 ,4부 찔레꽃 천사로 되어있으며 각각 19편으로 되어 있다.
사람은 언제나 아쉬움과 미련 속에 살다가 뒤늦게 후회도 하게 되고 다람쥐 체바퀴 돌 듯 언제나 제자리에 맴도는 삶을 살기도 한다. 여기 그리움을 짙게 그린 작품으로 웃음 사냥을 들 수 있다.
배시시
웃는 정을
모른 채 두고 와서
다시 가랴
하였더니
이미 밤이 깊었구나
그리다 간다.
웃음 거기 섰거라.
-웃음 사냥 전문-
단시조로서 적절한 음보와 행의 배열로 이루어져 있어 시각적 효과를 통하여 시의 이미지를 상승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
불안한 시대를 노래하는 작품으로 대추와 山中 과수원을 들 수 있다. 양심이 도둑질 당한 어둠의 시대, 오로지 실용적인 것만을 요구하는 이 시대 나의 욕정만을 채우는 것이 옳은 일일까?
대추나무
그늘 아래
유년이 달려오면
상것의
과한 욕심
젖비린내 토해내고
남은 것
몇 알 익어서
이어주는 양반 명줄
-대추 전문-
대추 몇 알로 명분을 지키려던 양반 사회를 과연 욕해야 할까. 아무리 배고프더라도 함부로 욕심을 탐하지 않는 양반들의 의젓한 자태가 그리운 것은 무엇일까? “상것의/ 과한 욕심/ 젖비린내 토해내고”에서 풋대추의 비릿한 냄새와 겹쳐져 시의 맛을 더해주고 있다. 자기의 실리를 챙기고 남을 버리는 세태의 아픔을 노래하는 시로 山中 과수원이 있다
고깔도 부족해서 그물옷을 입혔구나
날짐승 찍고 찍어 핑계야 없겠는가
앓느니 차라리 죽지, 작은 반란 일고 있다.
먹여주고 살펴주고 金枝玉葉 하였는데
어찌하여 배반인가 참으로 섭하구나
그까짓 고통도 없이 共存共生 나도 싫다
누가 원해 먹였는가 누굴위해 살폈는가
비밀거래 없었다면 자유바다 있을 것을
질긴 끈 우리들 인연 태풍이 답이었다.
-山中 과수원 전문-
모든 것을 다 해주어도 자기의 이익만을 챙기기 위해
평화스러운 산중 과수원에 모질 짓을 다하여 뒷거래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차라리 태풍이 답이었다 에서 고조된 목소리로 세상을 질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金枝玉葉, 共存共生 등 관념어가 눈에 거슬리고 있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와르르 무너지는 산을 바라고 보고 있노라면 우리들의 가슴이 턱턱 막힌다. 삭막해 지는 우리의 삶을 바라보노라면 우리들도 하나의 나무가 되어 조마조마 해 진다.
우거진
잡목 숲에
숨 죽여 사는 명목
집 한 채
무너지면
불면증 깊어가고
문명은
변덕의 노래
적이 되어 앞에 선다.
-개발 전문-
불면증으로 잠 못 이루는 아침이 되면 또 하나의 아파트가 키를 곧추 세우는 무감각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찔레꽃을 통하여 아련히 떠오르는 모정을 느끼게 하고 있다. 서글픔과 애련함이 범벅이 되어 떠오르는 어머님의 따뜻한 햇살이 비치고 있다.
아기
무덤위에
소복하고 앉은 여인
젖무덤
벗어놓고
실성하여 비를 맞네
모정은
향으로 차서
가슴마다 울려라.
-아기 전문-
찔레꽃 향기가 어머님의 사랑으로 변환하여 우리의 시각을 부채질하고 있다.어머님의 사랑은 언제나 우리가슴을 적셔주고 있다.
백일홍에서 정열적인 삶을 만날 수 있다.
누구의
勸을 받아
붉게 꽃을 피웠는가
긴 여름
타는 정념
야한 옷을 입었는가
깊은 밤
잠 못 이루고
기도하는 여인아
-백일홍 전문-
붉음-긴 여름-정념-야한 옷-기도하는 여인으로 이어지는 욕망, 뜨거움과 대치되는 욕정을 이겨내려는 것은 바로 우리 인간들의 애증스럼을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
인간이란 세월 속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달려가고 있다. 채시인도 인생의 추수기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며 달려가고 있는가?
수밀도
고운꽃이
비바람에 지는구나
덧없이
가는 청춘
너를 보며서러워라
터질 듯
눈물 채워서
쏟아 놓는 아픔이여
-수밀도 전문-
높은 산
모롱길을
더운 한 달 돌아가면
고개 넘어
내가 살 증산인가
청암사
주승도 우는
외로운 적막강산
-아흔 아홉 고개 전문-
덧없는 인생길, 아흔 아홉 고개를 돌아 외롭게 살아가는 첩첩산골 증산이라는 곳이 있다. 여기에서 채시인은 청산과 함께 외로운 삶을 누리고 싶다고 하였다. 때 묻지 않는 삶 속에서 청춘이 무너짐을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채우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 아닌가?
때로는 쉬엄쉬엄 쉬어서 가는 게 인생이다 완행열차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평화로운 마음으로 인생의 열차에 실려 모두가 떠나가고 있는 것이리라
역마다 세워주는 고마운 開窓 열차
후회 없이 다시보라 쉬엄쉬엄 가는구나
급행차 달려온 인생 부끄럽게 돌아본다
세상살이 시끄럽고 가진 짐 무거워도
주인 없는 자리라서 노인들이 앉아간다
간이역 머물고 싶어 하차하는 비둘기 떼
-완행열차 전문-
우리 모두는 급행열차를 타고 뒤도 옆도 보지 않고
마구 달려간다. 그러나 어느새 노인이 되어 한번쯤 삶을 反芻하고
후회도 해본다. 허물어져 가는 간이역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우리들 마음의 고향이 아닌가? 아직도 남아있는 부모의 체온이 간이역 의자에서 무언으로 남아 그리움으로 피어오르고 있다.
지나친 욕심으로
落果된 나의 이상
배움으로 밀려오는
일상의 두께에는
변색한
동화의 세계가
쪽빛으로 파장한다
무엇을 얻기 위해
그리도 버리는가
죽음으로 침묵하고
견디는 고통에는
희망찬
새로운 삶이
가지마다 반짝인다
-겨울과수원 전문-
누구나 이상을 향하여 줄달음치고 있지만 떨어진 낙과처럼 처절하게 나락으로 빠지고 만다. 그러나 고통과 침묵의 대가로 또 다른 세상을 열기 위한 봄을 맞기도 한다 가지마다 반짝이는 삶 그 자체가 채시인의 삶이 감정이입으로 처리되었다고 본다.
라일락
짙은 향은
지나친 사치라고
당신이
마다시면
꽃도 돌이 되는 것을
그 은혜
정성으로 피어나
돌에도 꽃이 핀다.
-孝子石 전문-
孝子石은 단시조로서 성공한 작품이라 볼 수 있다. 관념을 뛰어넘는 깔끔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 꽃과 돌을 넘나드는 확산적 사고는 채 시인이 갖고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인생의 삶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공원의자 있다
누군가 떠난 자리
온기가 남아 있고
던져놓은 담배꽁초
고뇌가 묻었구나
힘든 자
오늘도 와서
삶을 충전하고 있다.
슬픔에서 건져주고
사랑도 도우는가
깊은 밤 이른 아침
가슴의 문을 열고
누구나
오라고 하나
귀는 달지 않았다.
-공원의자 전문-
이 작품을 읽노라면 목사님의 설교가 클로즈업 되어 오는 것 같다.
인생들의 고달픔을 공원의자에 앉아서 풀어야 하는 서민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 마지막 종장 부분 “누구나 오라고 하나 귀는 달지 않았다”에서 편안함을 최고조로 상승 시켜주는 부분이라고 느껴진다.
너라 하니 너라 하고 맑다하니 맑다한다
주거니 받거니로 긴 겨울 싸웠는데
답 하나 얻어갑니다 모든 것은 제 할 탓
곱다할 줄 알았는데 밉다고 하여 보소
밉다 할 줄 알았는데 곱다고 하여 보소
법하나 찾아갑니다 모든 잘못 나의 탓
쌀 한톨 얻어먹고 눈물 일 줄 알았는데
시린 새벽 칼을 갈다 속절없는 갓끈일세
쌓은 정 버릴 수 없어 다시 듣는 산울림
-산울림 전문-
산울림은 교훈적인 시로서 반복법, 대조법을 적절히 활용하여 자신을 되돌아 보는 시라고 볼 수 있다. 제할 탓 , 나의 탓,을 항상 되돌아오는 산울림처럼 생각한다면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채시인이 생각하는 이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채명호 시집 “겨울과수원”에서 무작위로 작품을 선정하여 보았다. 채시인의 작품세계를 보면 첫째 투박한 시어로 순수함을 견지하고 있다. 매끄럽게 다듬어지고 기교를 부린 시보다 가슴에 와 닿는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쉽게 읽혀지고 웃음을 자아내는 해학과 익살이 내포되어 있다. 가난한 자의 편이 되어 가슴아파하는 인간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셋째 채시인의 작품은 정격 시조로서 운율감이 살아 생동감이 넘친다.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정격 시조를 지키려는 그 정신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넷째 단시조의 배열은 초장 3행 중장 3행 종장 3행 등으로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 시각적인 효과로 시의 이미지를 상승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어의 음보에 따라 변화가 있어야 되리라고 생각된다.
채시인은 그 자신 척박한 농촌에서 투박하게 살아온 시인이다. 아무 가식이 없는 순수함 그 자체가 바로 시라고 볼 수 있다. 잔잔하게 들려오는 평화로움, 천둥소리, 울부짖음, 모두가 고뇌도 되고 시도 되어, 작품을 갈고 닦는 그의 아픔 속에서 순수와 고독의 창으로 스펙트럼 되어 비쳐지고 있다
채시인의 첫시집 “겨울 과수원” 출간을 축하하며 그의 앞날에 문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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