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지산에서 길을 묻다.
함지산의 본디 이름은 방티산이다. 방티는 그릇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떡 방티, 엿 방티는 떡 그릇, 엿 그릇이라는 뜻이다. 순수한 우리말인데 한자어로 함지산으로 바뀐지 오래다.
한자어로 바꾸면 무엇이든지 높임말이 된다. 예를 들면 나이는 연세 또는 춘추, 집은 댁, 어머니는 모친, 가람은 강, 뫼는 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단어들이 한자어로서 높임을 나타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것을 낮추고 남의 것을 높이는 사대주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겸손의 뜻이었을까?
방티산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지나간 강북의 기쁨과 눈물, 그리고 우리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리고 언제 찾아가도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포근하다. 그래서 나는 틈만 나면 방티산을 찾아간다. 거기에서 참스승을 만난다.. 수많은 세월의 주름살로 굳어진 그 모습엔 기다림과 그리움이 고즈넉이 담겨 있다.
나에게 다정스럽게 말해 주는 방티산은 무언으로 나에게 길을 가르쳐 준다.
마음이 울적할 때 겨울 산 가보아라
마른 잎 서걱이는 잎사귀를 밟으면서
되돌아 되돌아온 길을 걸어가 보아라
마음이 나약할 때 겨울산 가보아라
늘 푸른 소나무가 묵상을 하고 있는
겨울 산
바람을 맞으면서 눈 감아 보아라
마음이 답답할 때 겨울 산 가보아라
길 따라 가다 보면 오르막 길 내리막 길
되돌아 되돌아온 길들이 눈앞으로 다가 올지니
(본인의 졸시 겨울산 전문)
소나무처럼 되어 내가 걸어온 길을 반추하면서 내일을 설계하곤 한다.
.방티산은 계절 따라 옷을 갈아 입으며 우리를 마중하고 있다. 울창한 소나무들이 군자처럼 말없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은 망일봉이다. 늘 기다림에 지쳐있는 망일봉, 그 곳을 찾기 위해 산을 오른다. 그러나 가다보면 여러 갈래의 길이 나온다.
어느 쪽으로 갈까 ? 길과 길이 나뉘어지는 곳. 선택과 집중이란 말이 여기서 통하는 걸까? 누군가가 이정표 하나쯤 세워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떠오른다. 길은 길을 만나기도 하지만 잘못 가면 전혀 새로운 곳으로 나가게 된다 이정표 없는 막막한 길을 가는 여정, 어쩌면 인생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방티산 망일봉은 우리에게 인내심을 가르쳐 주고 있다. 기다림에 지쳐버린
망부석처럼 정상에서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산은 기다림과 그리움 속에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 인간들도 그리움과 기다림의 미학을 그리면 사는 지도 모른다.
말없이 안겨주는 맑은 공기, 푸른 솔빛 향 흩뿌리면서 공평하게 나눠주고 있다. 이름 없는 꽃들은 말없이 피었다 지고. 한적한 곳에 자리잡아 윤회의 길을 걷고 있다.
아버님 팔뚝 같은 솔뿌리들이 울퉁불퉁 솟아올라 가는 사람들의 발을 잡는다. 살아남기 위하여. 비바람을 이기고 강인한 삶의 터전을 지기려는 우리 아버님의 모습이다. 끈질기게 살아온 아버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산을 내려간다.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물소리가 염불소리처럼 산속에서 울려퍼진다
“산은 올라갈 때 보이지 않는 것이 내려 갈 때 잘 보인다”.고 한다.
산은 겸손을 가르치고 있다. 사람도 높은 자리에 올라갈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지난날의 잘못이 보인다고 한다. 높게 오를수록 자신을 가다듬고 항상 자신을 경계하여야 되리라.
함지산은 나의 스승이다. 말없는 나의 스승, 나에게 자성(自省)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어머님 같이 따스한 내 마음의 고향이다.
오늘도 나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방티산을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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