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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및 문학평론

월간문학세계 신인상

휴강

정희식

 

늦은 봄철, 해거름 때이지만 아내를 재촉하여 이른 저녁을 먹었다. 야간 수업시간에 맞추자면 일찍 집을 나서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 시간엔 조금만 늦어도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차에 막혀 도로 위에서 옴짝달싹 못 한 채 묶여있어야 한다. 그래서 항시 서둘러 움직여야 정해진 시간에 수업 장소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아파트 주차장을 나와 몇 번의 신호 위반과 끼어들기를 반복한 끝에 지역대학의 평생교육원 강의실에 도착하였다.

글쓰기 수업이다. 선생님은 강의를 시작하면서 다음 주 수요일은 석가 탄신일이므로 한 주 쉬어가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라고 말하였다. 그냥 휴강이라고 알려주면 될 것인데 굳이 한 주 쉬어가는 시간으로 돌려 말하는 것은, 글쓰기 선생님다운 완곡하고도 맛깔스러운 표현이었다. 늦깎이 수강생들이 수런거리며 강의실의 분위기가 들뜬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한 주일에 한 번 있는 야간수업이다. 주로 여성들이 수강신청을 하여 그동안 잊었던 문학소녀의 소망을 이루고자 한다. 간간이 오는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글쓰기를 배울 목적으로 가사와 직장 일을 제쳐두고 온 사람들이다.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 시간은 바쁘고 중요하다. 할 일도 많지만, 몸과 마음이 피곤한 시간이다. 아까운 시간과 휴식을 마다하고 서둘러 수업에 참석한 열정적인 문학 지망생들이다. 그만큼이나 어렵사리 장만한 귀한 시간이건만 엉뚱하게도 휴강이라는데 해방감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 나이에 무엇을 배울 것이라고 기를 쓰고 집을 나서놓고는, 다음 주에 쉰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진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가?’ 하는 의문 말이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자식들에게는 학교나 학원을 빼먹지 못하게 엄격히 훈계했었다. 나 역시 정해진 시간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거의 한 평생을 이처럼 고정된 사고방식으로 살아왔다. 이제 와서 보면 지금의 감정은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다. 혼란스럽다. 어른이 되어서 체통 머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년퇴직하고 해가 거듭되면서 차츰 한가한 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지난날 써 놓았던 잡다한 이야기들을 다시 볼 여유가 생겼다. 내친김에 자료를 정리하여 컴퓨터에 옮겼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문장과 문단이 매끄럽지 못하고 딱딱하여 마치 관공서의 문서를 연상케 한 것이다. 의도한 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고 두세 줄이 넘어서면 글줄이 막혀버렸다. 일기나 신변잡기라면 모를까 밖으로 내어놓기에는 한참 모자란 글이었다. 글 자체가 문학적인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평생을 문서와 씨름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당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직장생활의 초기에는 신춘문예에 몇 번 도전한 경험도 있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틈틈이 책을 읽고, 글쓰기에도 손을 놓지 않았다고 자부했건만 허사였다. 욕심만 앞서고 마음에 드는 글이 만들어 지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글이 얼마나 힘 드는데, 중노동이야.”라는 충고를 하였다. 맞는 말이었다. 나이 들어 공연히 어려운 일을 만들어 사서 고생을 하는 것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쯤에서 그냥 접고 편하게 놀자는 마음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 해야 이 어려운 과제를 해결할 것인가 고민하였다. 객기라고 할지, 만용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오기가 돋았다. 그러는 중에 좀 엉뚱하지만, 정공법이 생각났다. ‘늦지만 대학교에 들어가 글쓰기를 배우자.’ 막상 이렇게 결심을 해 놓고 보니 갈 길이 너무 험하다고 느껴졌다. 물론 용기가 있다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는 않겠으나, 꼭 학교까지 가야만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입학시험이나 편입의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해낼 자신이 없었다. 경제적인 문제를 간과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입시 때문에 힘들었던 시절이 떠올라 이내 학교에 들어가는 일을 꿈꾸지 않기로 하였다. 생각만 하여도 끔찍했기 때문이다.

차선책으로 글쓰기에 관련된 책에서 길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새 책을 사서는 책마다 처음 몇 장은 열심히 읽고 나머지는 대충 보고는 덮어 두기 시작했다. 그 책 속에는 반드시 글쓰기에 관한 옳은 길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글을 읽고 이해는 되어도 내 것으로 만들기는 어려웠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글쓰기는 자득해야 할 기술이었다. 수영이나 자전거타기처럼 한번 배운 기술은 영원히 몸에 남아 있어서 평생 소멸하지 않는다. 뇌를 사용하는 언어는 쓰지 않으면 잃어버리지만 글쓰기는 기술이기 때문에 몸에 남아 있을 것이었다. 그러자면 기술을 배우듯 글쓰기를 배워야 한다. 이렇게 혼자서 결론을 내리고 드디어 내 나름대로 글쓰기 기술을 배울 괜찮은 방도를 찾아내었다. 대학의 평생교육원이 나의 고민을 적절하게 해결해 줄 맞춤형 장소로 보였다.

수업을 마치고 나니, 반 회장이 다음 주는 휴강입니다라고 공지를 한다. 교실은 즐거운 분위기다. 모두가 귀가를 서두른다. 강의실을 정리하고 학교 운동장으로 나오니 하늘에 별이 제법 떠 있다. 어제 내린 비가 황사와 미세먼지를 걷어가 도시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민낯의 하늘이 보였다. 연일 계속된 이상 고온이 한풀 꺾이고 교정에 핀 꽃들의 향기가 스며든 밤공기가 풋풋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차의 시동을 걸었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도로 사정은 원활하다. 올 때와는 달리 느긋한 마음으로 운전한다. 빨강 신호등으로 바뀌기 직전 노랑 신호등이다. 여느 때 같으면 통과해도 될 것이지만 차를 세워 신호를 지킨다. 이 시간에 굳이 빨리 가야 할 이유가 없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박자를 맞추어 본다. 다음 주에는 공휴일이므로 당연히 휴강이다. 마음이 가볍다. 그렇지만 이내 이러한 나의 태도가 모순이라는 자책이 뒤른다.

휴강과 휴가, 휴식 등 쉴 휴()”가 들어간 말의 공통점은 일정 기간 쉰다는 것이다. 쉬는 동안 긴장을 완화하고 정신적, 육체적 기력을 증진하여 다음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이다. 이젠 쉬어가면서 살자. 인생의 황혼기에 무엇을 이루려고 아등바등 사는 모양은 보기에 좋지 않다. 자신이 정해놓은 규범에 스스로 얽매여 스트레스까지 받는다면 이 또한 모순이다. 부처님 오신 날 저녁에는 오랜만에 손자도 보고 가족들과 맛있는 만찬을 하자. 이렇게 한번 결정을 하고 하니 즐거운 생각이 꼬리를 물고 반복되었다.

이때, 누군가 운전석 창문을 두드렸다. ‘이 밤에 웬 교통순경? 무슨 일이지, 음주운전 단속? 술 안 마셨는데.’ 창문을 내렸다.

사장님. 차 좀 갑시다. 신호가 바뀌었는데 뭐 합니까!”

뒤차의 운전자다. 잡아먹을 듯이 험상궂게 노려보더니 이내 표정이 풀어졌다.

생각은 생각을 낳아 행복감은 산만큼 부풀어 오른다. 오늘도 산 하나를 넘는다

서산에 해님도 쉬어가라고 한다.

 

 

 

 

 

약력

정희식

경남 합천군 부군수 역임

현 제일리버스 도축장 사장

010-4586-2251

 

 

 

 

 

 

 

 

 

 

 

 

심사평

정희식이 보내온 응모작품 3편은 수준이 고를 뿐 아니라 수필가로서 대성할 수 있는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그 중에서 ’ ‘휴강을 두고 당선작을 선정하는 데 고심하였다.

비는 환경이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 놓아 아내와 자신의 갈등을 그려놓은 작품으로 글을 끌고 가는 힘이 돋보였다. 그러나 마무리에서 약한 부분이 있어 휴강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수필은 자신의 경험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문학이다.

훌륭한 수필가가 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자신의 체험을 숙성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대상의 표피를 꿰뚫어 내면에 숨겨진 본질을 탐구하여 감동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작품은 여기에 부합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

늦깎이 학생으로 글쓰기 공부를 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을 디테일하게 그려놓았다.

휴강에 대한 갈등적 심리묘사릍 나타내어 내면에 숨겨진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끌고 가는 생각의 연결고리는 단단하다. 문단과 문단을 이어가는 구성력도 돋보인다.

휴강의 의미를 철학적 사유로 제시하여 달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젠 쉬어가면서 살자. 인생의 황혼기에 무엇을 이루려고 아등바등 사는 모양은 보기에 좋지 않다. 자신이 정해놓은 규범에 스스로 얽매여 스트레스까지 받는다면 이 또한 모순이다’.

수필은 자아성찰을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창출하는 문학이다.

정희식의 작품은 상상력과 체험을 조화롭게 융합하여 작품을 나타내고 있으며

잔잔한 울림으로 감등을 자아내고 있다. 수필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더욱더 정진하여 한국문단을 빛낼 수필가로 대성하기 바란다.

 

심사자 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