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어머니의 주름
정병식
검버섯 낀
쪼글쪼글한 이마의 주름은
백년의 흐름 속에 패인 삶의 골 같아라
그 골에는
이슬과 서리 눈비가 스며있고
겹겹의 주름 속에 생애의 이야기가 쓰여 있다
마디마디
굳은살 박힌 손등의 주름은
다랑논 모심고 비탈길 김매던 삶의 고랑
그 고랑에는
산나물 뜯고 도토리 주어다
끼니를 잇던 허기진 세월의 흔적이 숨어있다.
굽어 휘어진
배 둘레에 쌓인 주름은 자식을 잉태하여
이 세상에 눈을 뜨게 하고
젖을 물렸던
힘든 산고의 주름이며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위대한 어머니의 주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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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가는 소리
스쳐가는 바람에
툭 하고 밤송이 떨어지며 튀어나온
밤톨이 반들반들 햇볕에 윤기가 나네
후두둑 도토리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가며
한여름 울어대던 매미를 몹시 그리워 하고
톡 하고 까만 솔방울 떨어지며 함께 지냈던
다람쥐를 못잊고 이별을 아쉬워 하네
떨어지는 낙엽이
한잎 두잎 쌓여서 황색 융단길을 만들었고
이 포근한 길 걸으니 바스락 바스락 속삭인다.
이제 우리 삶을 다했으니 흙으로 돌아가자고
뒷산에 고운 단풍
이세상 자연이 그려준 최대의 화폭이며
그 누구도 그릴 수 없는 생명이 살아 쉼쉬는
불가사의한 명작이고 위대한 작품이다
그 멋진 작품 속에 호랑이가 이빨을 드러내 위엄을
포효하고 긴다리 노루는 여유를 부리며 뛰어노네
한가로이 풀을 뜯는 토끼도 담겨져 있다
솔바람 날리네
은행잎 나비되어 길가에 내려와 앉는다
이제 나비가 만들어 준 황금길 걸으니
귓가에 들려온다. 가을가는 낙엽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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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송
저기 산기슭
노송의 가지에
세월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있고
땡볕에 시달리고 눈바람에 찢기던
아픈 사연도 가지에 서려 있으련만
그 언제나
노송은 은은한 금빛을 내 비추며
오가는 사람들의 고마운 쉼터가 되고
높이 솟은 위상과 불변의 절개는
속세 인간이 사표로 삼아도 좋으리
솔잎 사이로 솔바람이 솔솔 불어
가지에 대롱 달린 솔방울 씨앗 날리고
쉴 틈 없이 오르내리는 다람쥐
산새들이 울어대며 반겨주네
어렵던 시절
허리가 잘리고 팔다리가 동강나
산골집 아궁이의 땔감이 되어서
불덩어리가 되었던 시련도 있었건만
이제 이 나라
국보1호 숭례문의 대들보가 되어
노송의 생명을 다하고도
우리의 곁을 지켜주고 있네
심사평
정병식의 작품 ‘위대한 어머니의 주름’ ‘가을이 가는 소리’
‘노송’을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시는 정서에서 나온다. 정서의 처리를 직선적으로 노출시킨다면 현대시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 시란 감각적 이미지로 형상화 시킬 때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 시는 설명이 아니고 느낌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모조리 묘사하려고 한다면 실패할 우려가 있다. 과감한 생략과 침묵이 필요하다. 독자가 생각할 몫을 남겨 두어야 한다는 듯이다.
’어머니의 주름’은 험난한 어머니의 길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주름 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허기진 세월의 흔적이 숨어 있다.’는 시적 미감을 높이고 있다. 변형묘사를 통하여 독자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주고 있다.
‘가을이 가는 소리’에서는 많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한편의 풍경화를 연상케 한다. 이미지의 형상화가 잘 되었다. 가을을 비유하는 능력도 예사롭지 않다.
가을의 모습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문학은 감동과 공감 그리고 재미를 주는 데 있다. 이 시는 동화 같은 이미지까지 덤으로 얹어 주고 있다.
‘노송’은 표피적인 묘사는 잘 되었다. 그러나 노송을 제재로 작가만의 독특한 목소리가 부족하다. 노송 속에 작가가 들어가서 시인의 목소리를 내야 시의 생명이 있다. 누구나 다 아는 것을 나타낸다면 독자들은 작품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노송‘에서 의인법 처리가 적절하다. 여기서 시적 생동감이 살아나고 있다.
더욱더 정진하여 훌륭한 시인으로 대성하길 기원한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심사자 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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